작가의 이야기
“역시…… 오랜만이야.”
“네?”
계산대에 선 여자는 무표정과 희미한 웃음 사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로 시작하여 여자를 거쳐 천장등까지 직선으로 이어져 나는 내려다보는 여자의 생김을 알아볼 수 없었다. 완벽한 일식에서 벗어나려고 약간 비껴 보았다. 또렷해진 달의 형상을 확인한 순간 해와 달과 지구의 움직임은 멈췄다. ‘터억, 쾅’, 이번엔 문 여닫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만 들어버린 내 심장 바닥 소리였다.
“잘 있었어?”
여자가 물었다.
“어? 어어……”
잘 있었냐는 여자의 물음에 목구멍이 막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네. 여긴 웬일이야?.”
아휴, 병신! 비싼 밥 먹고 기껏 던진 첫 마디가 이거야? 근사하지는 않더라도 어리바리하지는 않아야할 것 아냐! 그런데, 여자의 표정이 묘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술에 힘을 주어 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이 왜 여기에 온 지 모르냐는 듯이. 섣불리 넘겨짚거나 부풀려 추측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책방을 아우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서점? 어울린다. 투잡이라……”
“응?”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싶었다. 솔직히 여자의 혼잣말을 더 캐물을 정신 따윈 없었다.
“아니, 아니야. 서점 멋지다고.”
“아, 내 가게는 아니고 사장이 잠깐 자리를 비워서 그 동안만 맡아주기로 한 거야.”
이렇게 얘기해서는 안됐다. 여자에게라면 좀 더 그럴 듯 하게, 아니 솔직하게 얘기해야 했다. 사실 작가인데 작품 구상하면서 쉬는 동안 소일거리로 잠깐 맡아주고 있노라고. 나는 해운대 바다가 펼쳐보이는 마흔 평짜리 방을 무려 두 달 장기 계약할 정도로 여유 있는 작가 선생이고, 방에 들어가면 라벤더 입욕제를 담근 목욕물에 반신욕을 즐긴 뒤 각 잡힌 하얀 리넨 위에 늘어져 50인치도 넘는 TV로 영화를 볼 것이라고.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여자에겐 그렇게 얘기해야 했다. 이 나이에 고작 알바 사장 명함 밖에 내밀지 못하다니!
“그래? 근데 여기 커피 같은 거 있어? 손님도 이제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여자는 여전히 묘하게 웃었다. 여기까지 이어 온 대화 같지 않은 대화 끝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어디서 이런 침착함이 나온 걸까? 나이 탓인가? 아무리 그래도 마치 내게 용무가 있어 찾아온 것 같이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다니 말이 돼? 아니, 20년 가까이 마주친 적, 연락한 적 한 번 없는데 용무가 있을 리 없잖아? 게다가 여긴 내가 사는 곳도 아닌데? 나를 부러 찾아온 건가, 아니면 우연인가? 익숙한 듯 낯선 이 곳, 내 앞에 서 있는 익숙한 듯 낯선 이 여자는 과연 누구인가?
십수 년 전 그 여름 밤의 유성우처럼, 물음표는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