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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화를 내고 말았다

내 마음 아는 사람만 두로와

by 땅꼼땅꼼


언제부턴가 그랬습니다.

'보고 싶다'의 마음보다는 '뵈어야 한다'는 마음이 큰, 하지 않은 숙제를 들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친정 부모님을 뵌 지 오래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줄곧 아프다는 연락을 하셨고 입원과 퇴원도 했습니다. 기억이 날락말락한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보고 들어온 엄마의 편찮으심은, 그래서 이제는 무뎌지고 말았습니다.


내내 친정에 가봐야 한다는 부채감에 무거울라 치면, 큰언니가, 작은언니가, 오빠가 차례로 친정에 갔다는 카톡이나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러면 그날 잠시 무거움 마음을 떨치고 맘껏 놀 수 있었습니다.


기차역에서 적은 느린 편지

일이 있는 신랑은 빼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한 달 전쯤 기차표를 예매하고 며칠 전부터

친정집에 가서 먹을 것을 고민하면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함을 감지했습니다.

"이번에 가면 이틀 동안 꾹 참고 올 거야! 진짜 잔소리 안 할 거야."


불안함을 달래려고 자꾸만 자꾸만 되뇌었죠.


"네가 와도 암 껏도 못한다."

"여기저기 삭신이 안 아픈 데가 없다."

"기차 타고 올 땐 재미있어도 여기 와봐야 재미도 없고..."


딸이 왔으니 조심스레 내뱉어보는 엄마의 신세 한탄이었을 겁니다. 아무것도 못해주는 게 미안해 괜히 먼저 선수 쳐서 민망스런 마음을 내비쳤을 겁니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열 번쯤 참다 결국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왜 죄다 부정어로만 말해요?


불같이 쏟아내고 나니 슬금슬금 후회가 밀려듭니다. 답답해서 하는 말이라도 엄마는 변하지 않으리란 걸 압니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말은 그저 잔소리와 쏘아붙이는 것이란 것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장면을 보며, 정말 가슴을 후벼 팔 줄 아는 작가구나 생각했습니다. 내내 걱정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부모님께 향할 땐 왜 그리 독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변하는지...


회사선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어도 꾹 참아내고, 이해 안 가는 동료들을 봐도 그 사람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면서. 정작 매번...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입안의 칼날을 날리기 일쑤입니다.


아빠와 산책하며 걸었던 유채꽃밭


내일까지... 더,더,더... 엄마를, 아빠의 말을 들어보려 노력할 겁니다. 잔소리를 퍼붓기보단 말 한마디 들어주는 게 절실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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