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아는 사람만 두로와>
"폐렴이시래, 오늘 저녁 안 왔으면 여기서 손보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셨을 거라고 하네."
지난 금요일 늦은 밤,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에 간 작은 언니의 카톡 메시지입니다.
저녁 식사를 잘 마치고 누우셨다는데, 갑자기 열이 오르고 끙끙 앓으셔서 고민 끝에 응급실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종종 그러시니 밤 동안 지켜보자고 했는데, 검사 결과를 듣고는 깜짝 놀라 토끼눈이 되었다고 하네요.
어르신들, 특히 연세가 많은 노인들에게 폐렴은 치명적이라고 들었지만 막상 칠순 후반의 우리 아빠가 폐렴일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 없었습니다.
아빠의 폐는 보통 사람들의 1/3 남짓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지속하신 흡연 탓도 있으나,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폐를 비롯한 많은 장기가 망가지셨죠. 그럼에도 돌아와선 먹고살기 위해 잎담배 농사를 지었는데, 그 독하디 독한 생담배 냄새는 웬만한 청년도 이겨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런 아빠에게 폐렴이라니, 순간 더럭 겁이 났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술에 취하시면 고된 농사일에 소리치거나 가족들을 향해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다반사. 술담배를 모두 끊은 지 15년 남짓이지만, 그 자리에 옆은 치매가 자리 잡으면서 이따금 사나운 성질로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폭력에 힘들어하는 엄마, 철이 들 때부터 적어도 35년을 넘도록 그 모습을 본 나는 차라리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면 그리움이라도 남겠다는, 매우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오신 아버지는 난데없이 아들 타령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댁에서도 안 하는 아들 타령이라니...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아빠가 그럴 때마다, 나중에는 아빠가 그런 말을 할까 봐 엄마는 미리 아빠의 상태를 전하며 이해하라고 단도리하기 바빴습니다.
아빠의 병 증세 중에 하나라고 치부할 만도 하건만, 나는 바득바득 핏대를 세워가며 아빠에게 따져 묻는 어리석은 딸이었습니다.
대체 내가 애들 둘을 낳아 키우는 동안 뭘 해주셨길래 저리 당당하시단 말인가.
큰애를 임신했을 땐 직장에서 진급에 밀릴까 봐 6개월이 다되도록 임신 사실을 꽁꽁 숨기고 야근과 출장 모두 해냈습니다. 둘째 임신 때는 초기엔 유산할 뻔했고, 7개월 남짓엔 조산할 뻔했었기에 우리 부부는 셋째 아이는 말끔하게 포기하자고 했었습니다.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 애들이 10살도 넘었고, 내 나이도 40대 중반을 넘어가는데 별안간 웬 아들 타령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고, 아빠의 이상한 집착이라고 여겼습니다.
어쩌다 안부 전화라도 하면, 자꾸만 어긋나는 대화에 차라리 전화 횟수를 줄여서 감정 상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잊힐 만할 때까지 전화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폐렴'이라는 단어와 다음 날 조금 회복되었다며 링거주사를 꽂고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의 옆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울 아빠, 많이 아팠어요?"
"암시랑도 안 해. 언니 있어서 괜찮여."
아픈 애들 달래듯 한껏 콧소리를 내며 다정스레 말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물기있는 목소리가 새어나욌습니다. 아빠와 통화하며 울먹인 적이 없었던 나인데, 이번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종종 그리움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나는 아직 아빠를 보낼 준비가 안 됐다는 걸 비로소 깨닫습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어리석네요...
토, 일요일을 지나며 점차 기운을 차리시고 있다고 합니다.
잘 이겨내주시고 계신 모습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빠,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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