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번째 시
2023. 6. 8.
양광모,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시집 <가끔 흔들렸지만 늘 붉었다(이룸나무, 2016)> 중에서
여름비 쏟아지는 이른 아침
달팽이 한 마리가 비를 맞으며
1시간에 5m의 속도로
아파트 옆 하천 산책로를 기어가고 있다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두 개의 더듬이, 그리고 나선형 껍데기에 관한
은유와 상징을 더듬거려 보다가
당최 성에 차는 문장이 떠오르질 않아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지나가던 초로의 남자가 다가와
두 손가락으로 달팽이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더니
건너편 길가 풀섶 사이에 내려놓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등에 보이지 않는 높은 사원 하나
우뚝 세워져 있는 듯하여
나는 가만히 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동일한 제목을 가진 시입니다. 톨스토이의 답은 사랑이었고, 시인의 답도 그 주변을 공명하는 것 같네요. 시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보다는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반성하는 듯합니다.
이 시는 제게 엄마와 톨스토이와 장자를 동시에 소환하는 시였어요.
톨스토이의 단편에서 가난한 구두장이 시몬이 길에서 얼어 죽을 것 같은 사람(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에 내려와 있었던 천사였죠)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기 외투를 입혀 집으로 데려왔던 것처럼, 저렇게 두면 밟혀 죽을 것 같은 생명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풀숲 사이에 놓아주는 마음.
저희 엄마가 비 온 다음 날이면 그렇게 지렁이들을 구조하고 다니셨거든요. "너 거기 있으면 죽어," 대화까지 시도하면서 일일이 나뭇가지로 건져 풀밭에 놓아주느라 1미터 전진하는 게 너무 어렵던 엄마와의 산책. 망할 딸년은 이제 나이 지긋한 아줌마가 되어 엄마를 따라 하긴 하는데, 징그러워서 끄아아아 돌고래 초음파를 냅니다. 그 자연스러운 사랑의 마음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나 봐요.
제가 장자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열자 이야기인데요. 열자가 공부를 하겠다고 집을 나왔다가, 결국 그간 헛된 것에 이끌려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거든요. 고향으로 돌아간 열자는 삼년불출 위기처찬(三年不出 爲其妻爨), 삼 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아내를 위해 밥을 짓습니다. 사람 대하듯 정성스럽게 먹여 가축을 키우고요. 그러고는 도를 깨우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 것인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은 거죠.
세상의 도는 사랑에 있고,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가장 큰 공부라는 것을 우리는 밥 짓는 열자를 통해 배웁니다. 열자 이야기는 제가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에서 돌봄의 경험이 우리 삶과 작업에 미치는 화학작용들을 목격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부분이기도 해요. 공부를 하겠다고 나와서 머리를 굴리던 열자는 달팽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럴듯한 문장을 고민하던 시인의 모습과 겹치고, 아내를 위해 묵묵히 밥을 지은 열자는 조용히 달팽이를 아끼고 위해준 초로의 남자의 모습에 포개집니다.
자기 길 가는 도중에 그저 숨 한 번 쉬듯이 당연하게 하는 일. 남에게 알리려는 마음도 없이 그냥 하는 일. 그런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랑을 품은 이름 없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그나마 선하게 움직이는 거겠죠.
머리 굴리며 주로 누워있는 인간형인 제게도 죽비로 뒤통수 한 대 때려주는 시 같습니다. 세상을 이해해 보겠다고 책을 끼고 사는 사람보다, 그저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바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은 것 같아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아도 그냥 사람다운 사람들이요.
"그 사람의 등에 보이지 않는 높은 사원 하나/ 우뚝 세워져 있는 듯"하다는 부분이 참 아름답지요. 그런 사원들을 자주 만나고 참배하는 삶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