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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Oct 30. 2021

시절을 모르는 꽃, 쿠루이자키!


「ええええ。狂い咲きじゃない」


앞서 걷던 그가 놀라며 걸음을 멈춘다. 강 둔치를 따라 쭉 늘어선 공원 한쪽에 듬직하게 자리 잡은 나무 앞이다. 쿠루이자키(狂い咲き)다.


*狂い咲き:제철이 아닌 때에 꽃이 피는 것, 또 그 꽃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러게. 정말 10월에 벚꽃이라니!”


잎이 다 떨어진 빈 가지에 쫑긋쫑긋 하얀 것들이 달려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엷은 분홍빛의 벚꽃이다. 하나, 둘, 셋, 넷. 대충 보아도 꽤 많은 벚꽃이 구석구석에 피어 있다.


억새와 갈대가 부풀어 오르고, 은빛 맵시를 자랑하는 10월의 끝자락. 나무마다 잎을 떨어뜨리고, 공원 곳곳에 다듬어진 화단의 꽃도 비실비실 힘을 잃고 고개를 숙인 지 오래다. 다들 이렇게 겨울맞이를 하는 시절에 꽃을 피우면 어쩌라는 거니.


사실, 며칠 동안 하늘은 몹시 불안했다. 오늘도 아침부터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날씨가 좋을 것 같아서 아침 일찍 세탁기를 돌렸다. ‘덜덜덜’ 탈수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소나기가 내렸다. 30분쯤 지나 비가 그치나 싶더니, 귀가 ‘윙윙’ 거릴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었다가, 또 해질 무렵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이 밀려가고 하늘이 개었다. 파란 가을 하늘을 기대했지만 10월에 들어 제법 여러 날 비가 내리고 기온도 롤러코스터처럼 오락가락했다.


좀처럼 종잡기 힘든 날씨 탓에, 외출하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창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겉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몰라 손끝에 닿는 바람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오늘은 유난히 사람들의 옷차림이 제각각이다. 누가 10월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의 어느 때라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다양한 차림새다. 패딩 조끼를 입은 남자, 가죽 장갑을 낀 할머니, 도톰한 머플러를 칭칭 두르고 교복 치마를 짧게 올려 입은 학생. 맨다리에 반 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꼬마 둘. 하늘거리는 시폰 주름치마에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또깍또각 부츠를 신고 걷는 여성. 일교차가 심한 날씨만큼 사람들의 옷차림도 폭이 넓다.


사람도 이러한데, 초목도 마찬가지겠지. 봄인 줄 알고 꽃을 피운 나무에게 자꾸 마음이 쓰인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손이 차가워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물끄러미 나무를 바라본다. 점점 추워지는데 밤공기를 잘 버틸 수 있을까. 혼자 걱정이 많다.


신중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는 게 세상살이. 눈에 보이는 일부, 잠시의 모양만 보고 일생의 중요한 결정을 성급하게 내린다면, 이렇게 당황스러운 순간을 만나게 된다.


아름답지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키를 한없이 올려다본다. 때를 모르고 피는 꽃은 인정사정 없는 새벽의 찬 공기에 금세 떨어지고  것을 알기에, 설렘 안고 개화한 자태를 나라도 많이 봐주어야지.


지나가다 걸음을 멈춘 이가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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