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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Aug 27. 2021

도서관에서 온 전화 "작가님! 민원 전화가 왔는데요."

도서관 글쓰기 강의 중 걸려온 전화 "작가님! 민원 전화가 왔는데요...

도서관 글쓰기 강의 중 걸려온 전화 "작가님! 민원 전화가 왔는데요..."








모 도서관에서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총 8주 차로 오늘이 첫날이다. 강연이나 강의를 하기 전엔 언제나 긴장을 동반한다. 겉으로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듯한 태평함을 선보이지만 심장은 내가 좋아하는 다리 쥐포보다 더 쫄깃해진다. 강의 시작 30분 전, 노트북에 있는 온라인 '줌'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고, 해당 강좌로 입장! 화이트보드를 열고 아래의 내용을 적었다.



"앞으로 8주 동안 함께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글쓰기 수업은 '듣기' 보다 서로가 쓴 글을 '읽고' 삶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코로나로 대면 강의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비디오 화면을 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 때문에 글쓰기 수업의 100%는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누구는 비디오 화면을 켜고, 다른 누구는 켜지 않는다. 화면을 켤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냥' 켜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이유는 '내 얼굴이 팔리는(?) 게 싫어서', '수업 내용을 듣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등이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많은 걸 얻어가지 못하기에 '비디오 화면 On'을 간곡히 부탁한다. 드디어 오전 10시,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미 20명이 가까운 수강생이 입장했는데 화면을 켠 사람은 서넛뿐이었다. 심지어 대화창으로도 아무런 인사나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번 "영상을 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해도 서너 분을 제외한 나머지 화면은 캄캄했다. 감사하게도 한두 명은 자신이 있는 곳이 회사라서, 이동 중이라 화면을 켤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을 대화창으로 전했다. 묵묵부답인 상황에서 이런 메시지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우물을 만난 기분이다. 정말 감사했다. 여전히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 사람이 무려 15명이 넘었다. 다시 얘기했다.



(울기 직전의 애원 수준) "앞으로 8주 동안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수업 중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텐데, 화면을 켜지 않으시면 진행이 힘듭니다. 영상 좀 켜주세요.."



이렇게 반응이 없는 곳은 강의 2년 차 만에 처음이었다. 힘이 빠졌다. 어린이 글쓰기 수업을 진행할 때는 강사인 내가 목소리도 더 크게, 또박또박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1시간 30분 동안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집중하게 하려면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해 수업이 끝나면 진이 빠진다. 그럼에도 모두 영상을 켜고 참여도가 높은 어린이 글쓰기 수업을 하는 게 낫지 싶었다. 이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단 얘기다. 아무리 비대면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라는 생각뿐이었다. 힘든 마음이 다 가라앉기도 전, 갑자기 해당 도서관 사서님한테 전화가 왔다. (휴대폰 벨소리를 무음으로 했는데 노트북 옆에 두어서 알았다)



"작가님, 지금 민원 전화가 왔는데요..."

"네?"

"아, 비디오 화면을 켜라고 요구하지 말아 달라고..."

"..."



실제 대화는 더 길었지만, 결국 요점은 이거다. "당신이 아무리 떠들어도 나는 영상을 켜지 않을 테니 그만 좀 강요해라!" 누가 내 몸 안에 리모컨을 넣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몸과 생각 전부가 멈춰버렸다.




이곳 사서님께서 수업 제안을 하실 때 내용 설명 위주로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알겠다고 했지만 2시간 30분을 100% 설명으로 이끌긴 어렵다. 이게 특강이면 몰라도 8주 동안 진행될 수업이다. 하물며 글쓰기다. 수강생들과 주고받는 게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쓰기든 읽기든 이야기든. 그런데 80% 이상의 사람이 화면을 끈 채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을 거란 걸 1도 상상하지 못했다.








얼굴을 보며 온라인 모임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는 2가지다.




1. 화면 대부분이 꺼져 있으면 강사가 진행할 힘이 빠집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주절주절 말하라고 하면 차라리 덜 힘들겠어요. 동영상 강의 촬영을 위해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혼자서 이야기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요. 하지만 약 20명이 함께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 표정도 반응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채로 혼자서 2시간 30분을 진행하라는 건, 강사에게 가혹합니다. 특히 글쓰기 수업에서는 더욱이요. 코로나19가 없던 시절에 방송국은 왜 돈을 주면서까지 방청객을 모집했을까요? 그래야 앞에서 진행하는 MC들이 힘이 나거든요.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의 반응을 바로바로 볼 수 있으니까요.




2. 글쓰기 모임은 그저 듣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 때 혹시 "난 가면을 쓸 테니까 수업 도중에 말 걸지 마세요."라고 하는 사람 봤나요? "저는 그냥 조용히 수업만 들을 테니, 나한테 뭐 시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요? 오프라인 수업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아마 듣지도 보지도 못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은 왜 그렇게 소극적인가요? 책 <글쓰기의 최전선>을 쓴 은유 작가님이 여기에 대해 할 말이 있다네요.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 참여 비중을 높였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본디 적극적인 행위이다. 강사의 말을 가만히 듣는 수동적인 상태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글쓰기처럼 자기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피아노 교습소에서 피아노 소리가 안 들릴 수 없듯이 우리 공부방에서도 학인들 목소리, 의견, 생각, 책 읽는 소리가 또랑또랑 울려 나가길 바랐다. 나는 우선 기본적인 글쓰기 기법을 알려주고도 학인들이 수업을 이끌게 했다. 저마다 책에서 감응한 부분을 읽고 모르는 구절을 묻고 생각과 느낌을 말했다. 또 각자 써온 글을 발표하고 돌아가며 소감을 곁들였다. 학인들이 몸소 말하고 헤매고 느끼는 시간으로 채웠다. _ <글쓰기의 최전선> 중





본래 내 수업에는 수강생들의 글을 읽고, 삶을 나누는 시간이 반을 차지한다. 때론 이 방법이 좋은지를 고민하는데, 은유 작가님의 위 글귀를 읽고 완전히 굳혔다. '그래! 잘하고 있구나!라고!











한두 시간 동안 딱 하루만 진행하는 특강이라면 "나는 절대로 화면을 켜지 않겠습니다."라는 고집을 어느 정도 이해하겠다. 그런데 8주 동안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 겸 모임인데, 그냥 듣기만 하겠다는 태도는 많이 아쉽다. (상황이 어려워서 화면을 켤 수 없음은 물론 대화창에 메모 하나 남기기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함께 얼굴을 맞대며 삶을 나눠야 나도 모르는 아이디어나 글감이 모습을 드러낼 텐데 말이다.



감사하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화면을 켜주시거나 대화창으로 반응을 보이신 5~6명의 수강생 덕분에 1회 차를 마칠 수 있었다.



"작가님, 오늘 너무 고생하셨어요!"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기대할게요!"



등의 따듯한 격려와 응원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됐다. 나는 앞으로 특강을 제외한 온라인 글쓰기 수업 제안이 오면 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꼭 덧붙이겠다.



"제안에 감사합니다. 다만, 추후 모집 공고를 올리실 때 "비디오 화면을 켜시거나 대화창 등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하실 분만 신청해주세요."라고 명시해주시면 좋겠어요."



귀한 시간을 내어 수업에 참석한다면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걸 얻어갈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한 달, 1년, 3년 후 내 모습이, 상황이, 처지가 바뀔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인생 아닌가. 어느 일이든 결국 해내는 사람은 적극적인 태도의 소유자다.



사서님의 전화를 받고 수업이 끝난 직후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뭘 크게 잘못한 사람으로 비친 듯해서 억울하기까지 했다. 나의 요구가 나 혼자 편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적극적인 참여로 더 즐겁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길 바랐던 건데...



오후가 지나 저녁을 맞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역시 난 단순하다. 이렇게 글로 적으니 마음이 정돈된다. 하지만...






'이 수업이 유료였어도 그랬을까.

내가 유명한 강사였어도 그랬을까.

그래도 민원 전화는 심했잖아...'







_ 8월 26일 밤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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