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날의 어느 오후, 부모님 댁에서 오랜만에 언니랑 형부까지 다 모인 자리라 더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치킨 먹을까?”
형부의 이 한 마디에 우린 환호했고, 실행력 갑(甲)인 언니는 바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약 40분이 흘렀고, 배달 기사님이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얼른 현관문으로 향했다.
엄마네는 30층이다. 꼭대기 층인 건 좋은데 엘리베이터가 딱 한 대뿐이다. 그 말은 즉, 택배 기사님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승차하지 않으면, 엘리베이터가 다시 30층으로 올 때까지 긴긴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한다. 특히 배달하시는 분들께 ‘시간은 금’ 아닌가.
물론 요즘같이 비대면 시대에는 조금 편할 수 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얼른 문 앞에 물건을 놓기만 하면 되니, 엘리베이터를 다시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음식 배달은 상황이 좀 다르다. 사용자에 따라 ‘만나서 결제’를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기사님들의 고충을 알기에 가뜩이나 하나뿐인 엘리베이터를 또 기다리시게 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여,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대로 음식을 받기로 했다.
27, 28, 29층. 엘리베이터가 우리가 있는 30층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미리 두 팔을 벌리고 기사님이 건넬 치킨을 받을 준비를 마쳤다. 30층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기사님이 나왔다. 나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은 봉지를 낚아채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주시면 돼요!”
“어…? 내가 잘못 왔나?”
배려심 가득한 내 행동에 깜짝 놀란 남자는 혼잣말을 하며 주위부터 살피기에 바빴다.
“기사님, 배달 음식 주시고, 얼른 엘리베이터 타세요!”
“...네? 저…. 우리 집에 온 건데…. 요….”
“네?! 아……. 어떡해…. 죄송해요…!”
이미 뺏어 들은 남자의 검은 봉지를 부리나케 돌려주곤 재빨리 현관문을 닫았다.
“동생! 너 왜 그래?”
“처제! 치킨은 어딨어?”
“아…. 하하하. 그…러니까…. 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머리에 꽃만 달지 않았지, 완전히 이상한 여자가 돼버렸다.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황당하고 웃겨서 웃음이 멈출 생각을 안 했다.
그렇다. 남자는 배달 기사님이 아니라, 옆집 청년이었다. 아무리 한 달에 서너 번 이상이나 엄마 집을 온다고 해도 옆집 가족 구성원까지 일일이 알지 못했기에, 기사님인 줄 알았다. 나의 깊은(?) 배려심이 낳은 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저 평소와 같이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일뿐인데, 자신이 들고 있던 물건까지 빼앗은 오지랖 끝판왕 아줌마를 어찌 생각했을꼬.
배려심이란 ‘상대방을 위한 일’이거늘, 이건 뭐……. 상대를 너무나 황당하고 불편하게 만든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