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 시기가 다가와 이사를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옆집 201호와 교류하게 된 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먼저 손을 내민 건 고맙게도 옆집이다. 처음에는 우리 집 딸아이에게 간식으로 먹이라며 ‘잔기지떡’을 주었고, 며칠 뒤에는 둘째 임신으로 기초 체온이 오른 내게 시원하게 마시라며 수박 주스를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두고 갔다.
“아니, 빈 그릇만 달라니까요….”
“어찌 빈 그릇만 드리나요, 그런데…. 바로 드릴 수 있는 게 과자뿐이라….”
“무슨 소리예요! 우리 애들 먹일 거 하는 김에 드리는 거니까 서로 부담 갖지 말기로 해요!”
받기만 하는 건 도리가 아니기에, 그릇을 돌려드리러 갈 때마다 옆집 두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과자를 선물했더니, 되려 이웃 간에 이러는 거 아니라며, 마음 편히 받으란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딴 애는 당장 보답할 수 있는 게 과자밖에 없어서 드렸는데, 12살 첫째와 5살 둘째가 문 앞으로 나와 내게 90도로 인사까지 한다.
‘코로나19’로 가족도 자주 만날 수 없는 요 몇 년 동안 각자의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좀 솔직해져 보자. ‘코로나19’를 떠나 요즘 같은 시절, 그러니까 옆집에 누가 사는 줄도 모른 채 한 해 한 해를 넘기는 시대에 이웃 간의 정이 넘치는 집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옆집에 누가 사는 줄이나 알면 다행일지 모른다.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의 소란은 물론 살인까지 벌어지는 건 매체로 종종 접하는 우리가 아닌가. 친근한 사람에게 ‘옆집’ 언니, ‘옆집’ 오빠와 같은 표현을 쓰면서, 정작 우리 집 옆에 사는 이들에게 친근함은커녕 '미움'보다 무섭다는 '무관심'을 발사하고 있진 않나.
초등학교 6학년인 1994년, 8층짜리 아파트에서 우리 집은 3층이었고, 옆집에는 나보다 5살이 어린 남자아이와 9살이 어린 여자아기가 살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304호 아주머니는 하루가 멀다고 치킨이나 피자 등을 주문해서 함께 먹자며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매번 얻어만 먹는 게 멋쩍고 죄송스러워 큰아들의 산수(당시에는 ‘수학’이 아닌, ‘산수’라 칭했다) 공부를 봐주기도 했다.
30여 년 전에는 이랬다. 우리 집은 3층짜리 빌라에서 1층에 살았고, 당시 옆집인 102호 식구들과 친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행위를 했는데, 두 집의 현관문을 열어두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놀 수 있게 했다. 한술 더 떠 매주 일요일만 되면 양쪽 집 현관문을 열어둔 채 복도 중앙에 돗자리를 펴고 두 엄마는 칼국수를 만들었다. 심지어 서로의 엄마에게 ‘아주머니’라는 호칭 대신, ‘이모’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3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1년에 두세 번 안부 인사를 묻는 걸 보면, 보통 인연이 아니라 여긴다.
더 과거로 가 볼까. 35년 전에는 주택에 살았다. 당시 우리 집이 가운데, 아랫집에 한 가족, 옆에는 다른 가족이 살았다. 당시 인기리에 방영한 mbc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이 딱 우리 세 가족의 모습이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사이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끼리는 여름이 되면 마당 앞에 세워진 탐스럽게 열린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마음껏 따먹었고, 겨울이 되면 밤새 수북이 쌓인 눈으로 눈사람은 물론 우리 여섯 명 중 가장 연장자인 9살 ‘친언니’의 지위 아래 미끄럼틀까지 만들었다. 각자의 집을 오가며 낮이 밤이 되는 줄도 모르고 놀기에 바빴고, 그런 우리의 일상이 서로의 부모님들에게도 당연했기에 마치 자기 자식을 대하듯 밥이며 간식을 챙겨주셨다. 어른들끼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앞마당에서 삼겹살 파티를 즐겼다. 어른들은 삼겹살에 소소한 술 따위를 곁들이며 인생 이야기에 심취하셨고, 아이들은 고기 한 점 입에 물고 마당을 뛰놀다가 입안에 고기가 사라지면, 다시 자신의 부모에게 달려가 입을 벌려 고기를 얻어냈다. 그러다 한 남자 어른이 담배 심부름(당시에는 미성년자에게 술이나 담배 따위의 심부름을 보내는 게 가능했다)이라도 시키면, 거스름돈으로 막대 사탕이나 쥐포 등의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
‘이따 점심에 뭐 드실 거예요? 막내가 유치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해서 김밥 좀 만들었는데, 괜찮으면 내가 문 앞에 걸어둘 테니 먹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01호에서 카톡이 왔다. 마침 아침 식사를 거른 상태라 거지들이 뱃속에서 난동을 치고 있는 마당이었는데, 잘 됐다! 이참에 언니(아직 ‘언니’라는 호칭을 대놓고 부르진 않지만, 내 마음속엔 이미 언니다)를 집으로 초대해서 따듯한 차 한 잔 대접하며 담소를 나눠야겠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동안에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라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지만, 201호가 쏜 사랑의 화살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그럼! 모른 척하면 인간도 아니지)
‘이웃사촌’이란 서로 이웃에 살면서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을 뜻한다고 하는데, ‘가까운’이란 수식어는 고사하고, ‘이웃’이란 의미의 형체마저 희미해진 요즘, 201호가 쏘아 올린 따스한 정이 이웃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줌은 물론 내 가슴속 깊은 곳의 추억까지 꺼내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