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t yourself in my shoes!
처지를 바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뜻을 가진 ‘역지 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 함께, 서로, 같이'라는 말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렇다면 글 안에서는 어떨까? 글을 쓸 때도 남의 사정을 고려해야 할까?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이면 되는 거 아닌가? 말과 마찬가지로 글쓰기 역시 상대방 즉, 글을 읽는 사람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인터넷 홍수 속에 하루에 접하는 뉴스 기사만 해도 수십 건이다. 그 아래에는 수백,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댓글을 볼 때마다 누가 봐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기분 좋은 내용이 있는가 하면, 당장이라도 사이버수사대에 의뢰를 하고 싶을 정도의 악성 댓글(이하 ‘악플’)을 접하게 된다. 내가 기사 내용의 주인공도 아닌데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를 불러일으키는 악플을 볼 때면 정말 속상하다. 부디 당사자는 이 악플을 보지 않았으면,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왜 이런 악플을 작성하는 걸까? 심리가 궁금해진다. 물론 이유가 있는 악플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간다. 가령,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이의 기사, 뇌물을 받은 기업 간부의 기사, 국민을 기만한 정치인의 기사, 공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기사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댓글에도 정도가 지나친 내용은 삼가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외의 기사에는 도무지 악플의 이유를 모르겠다. 악플을 볼 때마다 모두 실명제로 바꿔서 댓글을 작성한 사람의 기본적인 신상 정보를 알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악플로 목숨을 버리려고 하는 연예인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2010년 여름, 언니와 상하이에서 1년 동안 거주를 했다. 부모님과 다 같이 지낼 때는 잘 몰랐는데 언니와 단둘이 나와서 산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툰 기억이 난다. 얼마나 별일도 아니었으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각자의 생각이 상대방과 맞지 않아 우격다짐을 한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언니가 서운했다. 괜히 욕을 먹는다고 생각했기에 그저 억울하고 분했다. 당시 나의 필살기는 ‘울기’였다. 이것 말고 내세울 무기가 없었던 것이다. 언니는 이런 내가 짜증이 났는지 ‘무시하기’ 전법을 이용했다. 울든 말든 개의치 않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했다. 거의 일주일이 넘게 한 집에서 어떠한 말도 섞지 않았다. 각자 같잖은 자존심만 가득했던 것이다. 어느 날 문뜩 ‘외국에까지 나와서 언니랑 꼭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의 폭을 넓히니 언니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지 싶었다. ‘그래, 내가 언니였어도 화가 났을 거야. 동생인 내가 참았어야 했어.’라는 마음이 들었다. 기특한 생각은 언니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단계까지 갔다. 편지를 남긴 것이다.
언니, 이번 일은 내 잘못이 커. 언니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힘든 시기인데 그걸 헤아리지 못하고 내 욕심만 차렸던 것 같 아. 우리가 언제 둘이 이렇게 해외에 나와서 살아보겠어. 몇 달 남지 않은 시간, 언니랑 좋은 시간들로 채우고 싶어. 언니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면 항상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고, 간식도 해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은 막막해 보일지라도 분명 언니의 길도 열 릴 거야. 이곳에서 서로를 더욱 의지하며 지내자. 화낸 거 정말 미안해. 용서해 줘.
출근하기 전, 언니 책상에 편지를 두고 나왔다.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했어. 얼른 씻어! 드라마 보면서 먹자!”라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진작 언니에게 편지를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별것도 아닌 일에 괜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까지 빼앗긴 꼴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언니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내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 나를 반성했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도덕 시간에 배우며 자랐지만, 여전히 ‘나’ 중심의 말과 행동이 꿈틀거릴 때가 있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어느 행동을 하기 전 항상 자신의 상태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내가 앞서는 순간, 상대방의 입장 따위는 ‘남의 집 불구경’의 신세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인디언 속담에 “Put yourself in my shoes”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당신 스스로 내 신발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라는 뜻이다. 즉, 자신의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의미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이나 사람의 겉모습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누군가가 심심풀이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글을 쓸 때에도 예외는 없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 후에 적어야 한다. 책을 읽고 쓴 리뷰라면서, 근거 없는 악플만 쏟아낸다면 어떨까. 아기를 절실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식 자랑만 늘어놓는 글을 쓴다면 어떨까. 필터 없이 써 내려간 글로 상처를 받는 건 상대방이다. (더 나아가 그의 가족들까지) 기억하라. 상처를 준 글(말)은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는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