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3가지 경우에도 감성적인 글이 통합니다. (ft. 자연/사물, 다가가기, 해외 취업) [이지니 작가의 에세이 글쓰기 수업]
감정이 아닌, 감성으로 글을 쓰고 싶은 분은
이 글을 끝까지 읽어 보세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감성’의 옷을 입고 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웬만한 사람들이 새벽 1~2시에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대낮에도 가능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감성적이긴 하지만, 내게 한 스푼의 감성이 더 들어온 것 같다. 오죽하면 이전 블로그, SNS에서도 ‘감성지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잖나. 블로그 이름도 ‘지니의 감성 한 스푼’이었으니 말이다.
자연에, 사물에 의인화할 때
감정이 아닌 감성으로 글을 쓰면 읽는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다. 내가 가끔씩 SNS에 올리는 한 줄 글귀는 감성으로 똘똘 뭉쳤다. 이를테면, 몇 년 전 나는 누구보다 강렬하게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이 가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 카메라에 하늘을 담고 이렇게 적었다. “가을 상자가 있으면 좋겠어. 추운 겨울이 올 때 꺼내 볼 수 있게.” 하루는 지인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걸 보았다. 다른 때 같으면 365일 밤이 되면 켜져 있는 가로등이 뭐가 그리 신기할까 하지만, 가을이 되니 감성은 빛을 발했다. 그때 떠오른 글귀는 다음과 같다. “가로등, 여심(女心)을 자극하는 키다리 아저씨." 가을 자체가 감성 범벅이다. 고개를 숙여도, 고개를 들어도 온통 감성 도구들이 서로를 주제 삼아 달라고 난리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또 어떠한가? 가을에는 유독 특이한 구름이 많다. 어느 날, 바람개비 모양을 한 구름을 보고 나는 이렇게 적었다. “구름, 넌 좋겠다. 도화지에 원 없이 그릴 수 있어서."
자연과 함께하면 감성은 배가 된다. 혹시 감성적인 글을 쓰고 싶거나, 써야 한다면 밖으로 나가보길 바란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의 매력이 있으니 그 자체를 느끼면 좋겠다. 나는 ‘숨이 없는 것’을 의인화시켜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만들기를 즐긴다. 작사를 배울 때에도 내가 습작한 노래는 사물을 의인화한 경우가 많았다. 사물을 의인화한 순간 자동으로 '감성'이란 옷이 입혀진다. 지금 눈에 보이는 사물이 무엇인가? 컴퓨터? 컵? 칫솔? 뭐든 좋다. 그것들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껏 글 요리를 해 보라.
먼저 다가갈 때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지옥철을 타고 회사에 가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직장인이었다. 지금 이야기할 사건은 좀 더 오래된 일이다. 당시 나는 같은 부서 직원 중 한 남자와 유독 사이가 안 좋았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해온 터라 그는 늘 내 인생의 ‘오점’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회의할 때마다 내가 내는 의견에 종종 반대했다. 이유가 타당하다면 인정하지만 막무가내 식의 “지니 씨의 의견은 그냥 별로야.”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잦아지자 나도 더는 억울하고 참을 수 없었는지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꽂은 화살로 상처를 받아 더는 일할 마음도 기분도 나지 않은 나는 조퇴를 했다. 한두 번도 아닌 일에 더는 참기 힘들었다. 그러곤 집으로 가는 내내 생각했다. 내 주변을 맴도는 두 가지 생각은 이러했다. “지니야, 복수를 해.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그 사람은 또 그럴 거야.”, “그래도 네가 참아,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잖아. 되레 그 사람에게 잘 해봐. 단,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다음 날이 됐다. 밤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때보다 일찍 출근한 나는 그 직원 책상 앞에 마실 것을 올려놓았다.
<어제는 제가 경솔했습니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생각이 너무 짧았어요. 어린아이처럼 당근만 받길 원했던 것 같아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적힌 메모와 함께.
메시지를 읽은 그는 내 자리로 와서 “지니 씨, 어제 일은 나도 사과할게요. 내가 경솔했어요.”라며 내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어제와 같은 상황에서 감정이 앞서 화를 냈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지도 모른다. 하루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생각을 바꿔 감성적으로 다가가니 마음이 편했다. 혹시 관계가 틀어진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감정이 아닌, 감성으로 다가가 보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진심을 담아 메모를 남긴다면 상대방의 마음도 눈 녹듯 풀릴지 모른다. 감정이 격했을 때 잠시 숨을 고르고 점 하나를 빼자. 감'정’보다는 감'성’으로 다가갈 때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미칠 테니까.
아날로그 방식이 필요할 때
2010년 8월, 언니는 중국어 공부를 위해, 나는 현지에서 일을 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갔다. 무슨 배짱으로 갔는지 한국에서 미리 알아놓은 회사도 없이 무작정 몸을 실었다. 일단 단기간에 중국어 실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3개월 정도 어학 코스를 밟았다. 2005년에 어학연수 경험이 있어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일정 기간이 끝날 무렵 집에 오면 일자리부터 알아봤다. 모집 공고가 자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노심초사, 오매불망 기다리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섬유 무역 회사에서 구인 공고가 나왔다. 모집 조건을 보니 누가 봐도 내 자리였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가?) 어떻게든 이곳에서 일해야만 했다. 이 자리를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만 같았다. 무조건 이 회사에 취직해야 했다. 나는 미리 준비한 이력서를 보다가 문뜩 인터넷 지원만으로는 내 열정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장 종이로 된 이력서를 구해 손으로 다시 썼다. 글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쓴 기억이 난다. 자기소개서도 내 간절한 마음이 더 드러나도록 수정했다. 누구나 적는 ‘내가 이 회사를 지원하는 이유’가 아니라, 나를 뽑아야만 하는 이유를 감성을 녹여 적었다. 다 적은 후 지하철을 타고 직접 회사를 찾아갔다. 아쉽게도 사장님은 홍콩에 상주하고 있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사무실에 있는 여직원에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담긴 봉투를 건네주고 돌아왔다. 그 뒤로 3일이 지났을 무렵, 홍콩에 있는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아, 내가 됐구나!’라고 확신했다. 며칠 후, 사장님은 상하이로 왔고,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자기소개서 잘 봤어요. 마치 애인에게 쓰듯 정성스럽게 썼던데요? 인터넷으로 지원하는 요즘, 손으로 써서 직접 회사에 방문한 사람은 지니 씨가 처음이에요. 게다가 다들 어디서 베껴 쓴 것 같은 이력서를 내미는데, 지니 씨 지원서는 마음이 짠했어요.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결정했어요. 결국 회사라는 곳도 사람과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감성이 필요해요. 중국인들 역시도 느끼는 감정은 동일하니까요." 결국, 직접 쓴 지원서의 힘으로 중국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사무실에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기에 1년 동안 적잖은 고충이 따랐지만, 돌이켜보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지고, 감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양한 장르에서 ‘감성’을 꺼내보자. 감성은 나 혼자만 몰래 꺼내보는 일기장의 소유물이 아니다. 각박한 세상이라며 탓만 하지 말고 감성으로 온기를 더해줘야 한다. 당신이 뿌린 감성의 씨앗이 당신의 인생을, 세상을 변화시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