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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un 20. 2023

카톡 메시지도 퇴고하는 여자

지독한 직업병

카톡 메시지도 퇴고하는 여자










"굿모닝! 고민이 있어서 지니한테 좀 물을게. OOO 준비가 많이 힘든데, 그만 포기할까 생각 중이야..."


며칠 전, 나의 20년 지기 A양이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라 반나절 동안 기도하고 생각한 뒤 답장을 보냈어요. 물론, 어떤 메시지를 담아도 내 말이 답이 될 순 없겠지요. 답장을 보낸 지 5분이 지났을 때,



"세상에, 일하랴 육아하랴 바쁠 텐데 이렇게 긴 글을... 따뜻한 격려와 조언, 정말 고마워! 근데... 카톡으로 보낸 긴 메시지인데도 글이 정돈된 느낌이네?"


음... 그럴 수밖에요. 나는요, 문자나 카톡 메시지도 고치고 다듬거든요. (전문 용어로는 '퇴고하다')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과정은 이렇습니다.



1. 하고 싶은 말을 줄줄 쓴다.

2. 다 썼으면 소리 내어 읽는다.

3. 메시지 내용 흐름이나 맞춤법 및 띄어쓰기를 점검한다.

4. 상대방 입장에서 기분 나쁘거나 오해할 만한 소지가 글에 묻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5. 두세 번 정도 더 읽은 후, 보내도 좋다 싶으면 전송 버튼을 누른다.


** 정돈되지 않은 날것의 메시지가 그대로 상대에게 전송될 수 있으니, 필요에 따라 메모 앱에 우선 작성한다.




"미쳤네, 미쳤어... 아주 단단히 미쳤어!"라고 생각하시죠? 오해하진 마세요. 한두 줄의 짧은 메시지는 5단계까지 안 가요. (어쭈구리) 언제부터 고쳐 쓰는 직업병이 몸에 배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병'이 좋습니다. 말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책으로 출간되기 전까지 혹은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잖아요. 상대방 입장에서 기분 나쁘거나 오해할 만한 소지를 없앨 수 있어 좋고, 때론 순간의 '욱함'을 예방할 수 있으니 땡큐죠. 이렇듯 글이 지닌 장점을 원 없이 누리는 거라 생각할래요.




어느 날, 직업병을 없애주는 명의가 나타나 내게 무료 진단 및 치료를 해 준다고 해도 거절하겠습니다. 왜냐고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이, 그저 실패라 불리는 실수를 밥 먹듯 하던 이혜진(본명)이란 삶에서 평생 글을 쓰고, 써야만 하는 이지니(필명)의 삶으로 인도해 준 은인같은 녀석이 바로 '고쳐쓰기'니까요.




사랑한다, 내 지독한 직업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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