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일터에서 나는 명함이 없었다. 당시 방송작가였는데 대본 쓰는 일을 했음에도 막내라는 이유로 명함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 후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드디어 내게도 명함이 생겼다. 하지만 생각만큼 기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돈' 때문에 해야 했기에 그곳에서 생산된 명함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이름 앞에는 내 의지와는 달리 주임, 대리와 같은 직책을 안아야 했던 까닭이다.
2016년 10월, 오랜 시간만큼 많은 것이 달라졌다. 큰 변화는 더는 돈 때문이 아닌, 가야 할 '사명'을 만난 것. 그 길에서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를 출간했다. 2018년 1월, 아무것도 아닌 내가 두 권의 책을 냈을 무렵에 '진짜' 명함이 생겼다. 명함을 받던 날, 입에 풀칠하는 날이 많아도 꿋꿋이 이 길을 가겠노라 다짐하며 값비싼 보석을 대하듯이 명함을 손가락 사이에 품고 잠이 들었다.
작가 이지니로서 만든 첫 명함은 어느 모임에서 시작됐다.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이들이 모여 미래를 이야기하고 응원하는 자리에서 명함이 탄생했다. 어느 회사 대리가 아닌, 소속이 없는 날것 그대로의 명함이었다. 그 명함으로 방송국이나 도서관 등에 출간 도서와 함께 보냈다. 내 명함을 받은 이들이 곧장 휴지통에 버렸는지, 자신의 지갑에 넣었는지, 어느 낡은 책장 속에 끼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장 한 장 보낼 때마다 멀리 유학 보내는 부모 마음처럼 짠했다. 물론 명함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후로 나는 북 콘서트를 비롯해 강연, 칼럼 등의 기회를 얻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후로 2년 반이 지난 지금, 두 번째 명함을 손에 쥐었다. 그새 두 권의 저서가 목록에 추가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보라색을 덧입혔더니 봄날의 수줍은 처녀 같다. 거기에 이름 석 자와 가장 좋아하는 글귀를 캘리그래피로 담아냈다. 참, 곱디곱다.
두 번째 명함은 나를 어디로 인도할까. 명함에 새긴 글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처럼 앞으로 1년 뒤의 일을 예측할 순 없지만,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야겠다. 돌아보니 나라는 사람, 한 걸음 한 걸음 잘 걸어왔다. 느릴지라도 주저앉을지라도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고 일어섰다. 남과 비교할 시간에 자신을 돌아봤다. 조급할수록 더욱 하늘의 타이밍을 신뢰했다. 되든 안 되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움직였다. 타인의 속도를 들추기보다 거북이만큼 느리지만, 내가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무슨 유명한 작가나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있어 감사하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명함도 나와 함께 힘차게 살아낼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