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반복되는 일에 나의 최선과 친절을 담는다는 것

by 수영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된 지 12년 차, 개원의로 산지 9년 차이다.

날마다 거의 1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을 만난다

그중에 대부분은 내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잘 이겨낼 아이들이고 일부가 내 진료가 정말 도움이 될 아이들, 그리고 아주 가끔씩 정신이 번쩍 들며, 빠르게 전원을 준비해야 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크게 아픈 아이들이 없을 땐 똑같은 일들을 빠르게 반복하게 되는데, 그럴 땐 내가 병원에서 일하는 것인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인가 혼란스러워질 때도 있다

전날 잠을 잘 못 잤거나 감기 기운이 있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게 힘겹다.

낯가림을 하는 건지, 주사를 맞았던 기억이 나는 건지, 진료 의자에 앉기 전부터 정말 온 힘을 다해 울어대는 아이들과, 그래도 온 김에 이것저것 묻고 싶은 부모들을 상대하고 나면 그게 몇 분이어도 진이 빠진다.

어른 두 명이 와서 우는 아이를 한 분이 데리고 나가고 다른 한 분과 대화를 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마저도 안되면, 발악하며 우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아무리 큰 목소리로 말을 해도 보호자는 못 들었다며 계속 되묻고,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고 진료를 마무리 짓고 싶은데 보호자분은 궁금한 게 너무 많다.

그런 상황이 하루에 수십 번쯤 반복된다.

잘 참고 일하다가도 가끔씩은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마음이든 어떤 상태이든, 오늘의 마지막 환자까지 나의 최선의 진료와 친절을 주기로 결심한다.

내가 그렇게 마음먹은 데는 세 가지의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임신 5주 차, 매우 초기에 입덧을 시작했는데, 임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때 유행하던 장염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2차 병원에 혼자 있는 소아과 과장이었기 때문에 일을 쉴 수는 없어서 이것저것 약을 더해서 복용하며 일을 지속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임신 테스트를 해봤는데 아주 진한 두 줄이 나왔다.

장염 약이랄 게 임신에 아주 해가 되는 약은 없었지만 임신 초기인데 무리해서 일을 하고 약을 먹었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출혈이 있으면서 초기 유산이 되었다.

의학적으로는 내 탓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엄마 마음으로는 내 잘못 같고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몇 달 뒤 다시 생리 예정일 근처에 장염 증상이 시작되었다.

아직 생리 예정일이 며칠 남은 시점이라 임신 테스트기도 소용없을 텐데, 약을 먹으려니 불안했다.

그래서 근처 산부인과를 찾아 피검사로 임신 확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완전 어이없다는 말투로 그걸 지금 왜 하냐며 그냥 약 먹으라고 말했다.

그래도 해달라고 우겨서 검사를 하고 임신이 아님을 확인하고 나왔지만 그날 산부인과 의사 태도는 나에게 정말 상처가 되었다.

그 뒤로는 지금 내 판단에 환자나 보호자의 말이 이상하고 전혀 말이 안 된다 할지라도 성급히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지 지금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두 번째는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친구의 오빠가 20살 무렵 갑자기 사망한 채 대학교 기숙사에서 발견되었다. 자살도 아니었고 이전 기저 질환도 없었으며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은 너무나도 큰 충격과 황망함 속에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당시 고인의 화장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너무도 사무적으로 대했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날마다 반복되는 일이기에 그날도 그냥 기계적으로 일을 했겠지만 가족들에게는 그들의 말과 태도 하나하나가 정말 큰 상처가 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나의 진료실에서의 하루하루가 떠올랐다.

난 날마다 같은 일을 하고,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고 짜증을 내지만, 오늘 내게 오는 사람들은 첫 육아가 버겁고, 당황스럽고, 아이가 많이 아픈 건 아닐까, 내가 놓치는 것 없을까 걱정이 돼서 진료실을 방문했을 터였다.

나의 따뜻한 말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 나의 짜증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 번째는 내가 일상에서 겪었던 일이다.

둘째용 유모차를 대여해서 몇 달 사용하다가 반납을 해야 하는데, 대여 업체에 연락해 보니 처음에 왔던 대로 상자 포장해서 문 앞에 내어 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대여 업체가 지정한 곳 택배 아저씨가 내게 전화해서 택배가 무겁고 커서 못 가져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알겠다고 하고 끊고 대여 업체에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대여 업체에서 택배 회사에 연락해서 비용을 더 지불하고 대형 택배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그 택배 아저씨가 다시 전화하더니 돈 많이 줘도 이 택배 못 가져간다고 나한테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알겠다고 하고 끊었는데, 이후에도 2~3번을 전화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면서 계속 화를 냈다.

어찌 보면 별 일 아닌데도 며칠 내내 기분이 나빴다.

그때 깨달았다.

어떤 일이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매우 기분 나쁘게 할 수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


이 세 사건을 통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오늘도 새로울 것 없이, 그렇다고 앞으로 바뀔 희망도 없이,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견뎌내며 똑같은 일을 한다.

그렇지만 내게 맡겨진 일에 나의 최선과 친절을 담는다.

내게 오는 사람들은 나처럼 이 순간이 똑같은 일상이 아니고 도움이 필요해서 온 것일 테니 말이다.

내가 이 일이 힘들다고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 처음엔 가슴 설렐 수 있지만 몇 달 지나면 그것도 똑같은 일상이 된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힘은 밖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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