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믿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수영

내 아이는 참 천천히 큰다.

옆집 애들은 참 빨리도 크는 것 같은데 우리 집 아이는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안 큰다.

날마다 봐서 그런가 생각하기엔 아이 친구들은 쑥쑥 자란다


아이는 뭐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아이가 어렸을 때였으니 그렇다 쳐도 학교 생활도 하나하나 참 쉽지 않았다.


아이는 코로나 시기에 처음 1학년이 되었는데, 거리두기 때문에 처음에는 줌 수업이 많았다.

아이를 컴퓨터 앞에 앉혀놓고 옆에서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왔다.

일단 선생님이 아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된다고 선생님이 부르시면 대답은 꼭 해야 한다고 몇 번을 가르쳐도 요지부동이었다. 아이들 발표 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며 안절부절못하다가 본인 차례가 되면 컴퓨터 앞을 벗어나 울면서 다른 곳으로 숨었다.

수업 끝에 선생님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친구들 먼저 로그아웃을 하는 게임을 할 때면 2번 정도 지고 나면 큰 소리로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친구들은 신나 하는 놀이이고 진다고 못 나가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우나 싶었다

답답하고 속상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면 아이는 "엄마는 내 마음 몰라" 소리 지르며 더 울어댔다.


아이는 학원도 방과 후 수업도 아무것도 다니지 않겠다고 해서 학교만 다녔다. 그러다가 3학년 때 아이를 열심히 설득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미니어처 만들기 방과 후 수업을 신청했다

아이는 수업은 재밌지만 방과 후 교실에서 화장실이 너무 멀다고 했다.

멀어봤자 같은 층에 있고, 방과 후 수업 시간 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면 된다고 말해줬지만 아이는 학기 내내 수업 전날마다 화장실이 멀다며 징징거렸다.

툴툴 거리는 정도면 참아보겠지만,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 수도 있지 않나며 수업은 재밌지만 화장실이 멀어서 그만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지치지도 않고 해댔다.


크면서 뭐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는 아이가 참 벅차고 힘들었다.

도대체 언제 크는 것인지.

아이의 학업이나 미래의 좋은 직업까지 욕심내면 아이든 나든 둘 중 하나는 정신과를 다니게 되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크면 나의 도움 없이 일상을 잘 살아내고, 이후 사회에 나가면 어떤 분야건 상관없이 본인의 역할을 해내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육아의 목표를 삼았다.

그것도 사실 쉽지 않다.

내년에 중학교를 가는 내 새끼는 정말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그래도 돌아보면 참 많이 컸다

일주일, 한 달, 1년쯤은 컸는지 안 컸는지 잘 모르겠는데 1학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많이 컸다

혼자 학교도 못 가던 아이가 혼자서 버스를 타고 어딜 다녀온다

날마다 학교에서 큰 소리로 대성통곡하던 아이가 일주일에 하루쯤 조용히 눈물만 흘리다가 돌아온다

수학 문제집 채점해 주며 틀렸다고 다시 해보자고 하면 화내면서 문제집을 찢어버리던 아이가 이젠 오답 정리를 스스로 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긴 호흡으로 보면 아이는 큰다

1~2년쯤은 별 변화 없어 보여도 3~4년 지나서 생각해 보면 많이 컸다 싶다.

모든 아이에겐 나름의 성장 속도가 있다.

바라보는 부모는 속이 터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면 아이는 큰다.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이게 육아의 거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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