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by 수영

작년 12월에 남편의 외할머니가 8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남편의 외할아버지는 첫 번째 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두 번째 부인을 들이셨고 그분이 남편의 외할머니셨다.

외할머니는 슬하에 딸 둘, 아들 셋 이렇게 다섯 명을 두셨고, 그중의 첫째가 우리 시어머니셨다.

외할아버지는 막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아이 다섯을 남편 없이 혼자 키우시느라 엄청 고생하셨다고 했다.

10평대 아파트에서 여섯 식구가 오밀조밀 살았는데 막내가 고3 때 공부하다가 늦게 들어오면 모두가 자고 있고, 현관문 바로 앞에 딱 한 명 누울 공간이 겨우 남아있어서 거기서 누워 잤다고 했다.

그렇게 힘들게 키운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하고 손주들이 태어나자 할머니는 먹고살기 바쁜 자식들을 위해 손주들을 다 맡아 키워주셨다.

손주 9명 모두 외할머니 손을 거쳐 컸다.

남편도 6살까지 할머니 손에 컸다고 했다.

남편은 외할머니의 첫 손주이고 그래서인지 외할머니와의 사이가 더 각별했다.

난 남편과 결혼 후 12년 동안 매 명절마다 외할머니 댁을 찾아뵈었고 거기서 1박 2일을 보낸 후 돌아오곤 했다.

외할머니는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외할머니'의 모습 그대로셨다.

항상 웃고 계셨고, 잔소리 한번 안 하셨으며 맛있는 걸 끊임없이 주셨다. 내가 가서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저리 가서 과일 먹으라며 나를 기어이 앉히시곤 했다.

그런 외할머니에 대해 자식들도, 손주들도 애정이 가득했다.

명절이면 모든 가족들이 할머니의 10평대 좁은 아파트로 모여들었다.

남편과 결혼해서 처음 찾아갔을 땐 20명 정도가 모였으나 이후 손주들이 줄줄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30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좁은 아파트에 30명이 넘게 있으면 앉을자리도 없이 북적북적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하하호호 즐거워했다.

오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데 다들 그렇게 당연스레 모였다.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증손주들이 노는 걸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셨다.


할머니의 자식들과 손주들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딱히 잘난 사람들은 없었다.

첫 손주인 내 남편이 내과 의사가 되어 모두의 자랑이 된 거 외에는 다들 세상 기준으로는 평범했다.

택배일이나 화물차 운전, 중소기업의 직원, 작은 병원의 간호사 등 조금은 빡빡하고 힘들게 사셨다.

그렇지만 명절에 모이면 아무도 서로에게 날 선 소리를 하지 않았고, 웃음소리가 1박 2일 동안 담을 넘었다.


나에게는 이런 명절 분위기가 생소하고 신기했다.

이와 완벽히 대조되는 곳이 우리 친가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친할머니는 매우 똑똑하셨지만 모두에게 지독한 잔소리를 퍼붓는 분이셨다.

할머니의 집착 같은 권유로 친가에는 의료계 종사자가 매우 많았다. 큰 아빠가 약사, 막내 작은 아빠가 종합병원의 오너인 의사셨고, 손주들 중에서도 약사가 1명, 의사가 5명이었다.

모든 집에 각각 의사가 1~2명씩 있었다.

나 조차도 할머니와 아빠에게 '의사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랐고, 수능 시험 이후 의대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럴 거면 대학에 가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친가의 분위기는 명절마다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형식적으로 모여 할머니에게 인사드리고 뻘쭘하게 잠깐 모였다가 몇 시간 만에 헤어졌다.

그마저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모이지 않았다.


남편의 외가에서 12년의 명절을 함께 보내고 외할머니가 하늘로 떠나셨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일단 모든 가족들이 아이들까지 데려와서 아무도 장례식장을 떠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가까운 분들의 장례식장에 가보면 아이들이 어리다며 핑계 대고 빨리 떠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들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의 셋째 아들인 외삼촌은 전처와의 사이에 세 아이가 있었는데, 세 아이가 모두 큰 다음에 재혼을 하셨다. 재혼한 분에게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둘 있었고 그 둘도 결혼해서 6살, 3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도 모두 장례식에 매일 왔다.

장례식장에는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2박 3일 동안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놀았고, 어른들은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2박 3일을 함께 보냈다.

손님들이 다 떠난 밤이 되면 어른들은 외할머니 영정 사진 근처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외할머니에게 못다 한 말들을 건네기도 하고, 눈물을 쓱 닦고 외할머니 사진 옆에서 손 V를 만들며 웃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입관식 때는 나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이 내려가서 과정을 지켜봤는데 모두가 오열하며 울다가 한 명이 쓰러지기도 하고, 그렇게 울다고 올라와서는 눈물 쓱 닦고 다시 함께 웃으며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외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은 외할머니에게는 없었다.

끝까지 시골 좁은 아파트에서 세상이 말하는 부귀영화 없이, 딱히 내세울만한 것 없도 그리 사시다가 가셨다.

그렇지만 자식들도 손주들도 외할머니를 지극히 사랑했고 자식들과 손주들은 좁디좁은 외할머니의 아파트에 모이는 걸 기뻐했고 서로를 진정으로 위했다.


'무엇이 성공한 인생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


외할머니의 장례식이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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