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치료받으시는 아빠의 보호자가 되어

:호흡기 내과 진료실에서 주치의 선생님과의 짧은 대화

by 수영

1.항암 치료 후 열이 있으셨나요?

-아니요, 그런데 해열진통제는 날마다 드셨어요


(속으로 삼키는 말)

첫 항암 때 아빠가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오한이 심하셨어요, 옆에 계시던 엄마 말씀으로는 ''평생 니네 아빠 그런 모습은 처음 봤시야, 눈이 뒤집혀서 흰자만 보였다니깐, 간호사들 뛰어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라고 하셨죠. 집에 오셔도 꼬박 일주일을 끙끙 앓아누워계셨어요. 그 뒤로는 항암 날짜만 다가오면 두 분 다 걱정이 태산이세요. 며칠 전부터 두 분 다 식사도 잘 못하시고 잠도 잘 못 주무셨어요. 엄마는 아빠 항암 전날이면 어김없이 두통과 소화불량이 생겨요. 항암 치료 후 또다시 힘들어하실까 봐 항암 치료 후엔 일주일간 해열진통제를 아침저녁으로 챙겨드세요.


2.잘 드시나요?

-잘 못 드시네요, 2kg이나 빠지셨어요.


(속으로 삼키는 말)

아빠는 항암제 투여 후 맛이 전혀 안 느껴진다고 하세요.

환우 카페 찾아보니 같은 약을 쓰는 다른 분들도 그렇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아프기 전부터 입맛이 까다롭고 엄마에게 반찬 타박이 잦으셨던 아빠는 이제 엄마를 하루 종일 들들 볶아대세요. 이게 맛이 왜 이러냐, 이런 걸 어떻게 먹으라고 내놓냐며 소리를 지르세요. 새벽 4시에 자는 엄마를 깨워서 수육을 내놓으라고 하셨는데, 엄마는 화가 났지만 그래도 꾹 참고 요리를 하셨대요. 쌈장을 같이 내와라, 국물은 왜 없냐 소리 지르시던 아빠는 결국 딱 2점을 드시고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대요. 엄마는 아빠를 잘 드시게 하는 게 엄마에게 맡겨진 중대한 임무인 냥 아빠의 젓가락 횟수에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세요. 애쓰시다가 마음이 힘들어지시면 딸들에게 감정을 쏟아내세요. 나한테 이러지 말라고 화도 내봤지만 소용이 없네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에 피할 길 없이 갇혀버린 전 이 상황이 너무 힘들고 당황스러워요. 내가 이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엄마가 무너져버릴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꾹 참고 있어요.


3. 호흡곤란은 어떠신가요?

-쉴 때는 괜찮으시고 걸으실 때는 숨이 좀 차다고 하시네요


(속으로 삼키는 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계시면 너무 좋으시대요

걸으면 숨이 차다고 점점 더 안 움직이려 하세요

활동을 안 하고 누워만 계시니 점점 더 기력이 쇠하시는 것 같아 속상해요. 다리 근육도 점점 빠져서 걸으실 때 휘청거리세요. 계단을 올라가실 땐 위태위태해서 엄마가 뒤에서 아빠 등을 두 손으로 붙들고 계세요.

이러면 나중에 걷지도 못하게 된다고 협박을 했다가 제발 움직이시라고 애원도 해보다가 하는데 소용이 없네요. 엄마가 같이 나가서 산책하자시면 엄마한테 버럭 소리를 지르세요. 그러니 엄마도 하루 종일 나가지도 않으시고 집에 계세요. 이러다가 엄마도 아프실까 봐 걱정되는데, 아빠 놔두고 엄마라도 나가서 좀 걸으시라는 말도 엄마는 버겁기만 하신가 봐요.


4.아버님이 기력이 점점 없어 보이시는데 어떤가요?

-네, 그러신 것 같아요


(속으로 삼키는 말)

아빠에게서 생명의 빛이 조금씩 사위어 가는 것 같아서 너무나 애가타요.

아빠는 항암 치료를 그만하고 싶으시대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고 힘도 없고 누워만 있고 싶은데, 이제 그만하고 죽고 싶으시대요.

병원에 갈 때마다 열몇 개씩 되는 바틀에 가득 피를 뽑을 때마다 팔이 서늘해지며 쩌릿쩌릿하시대요. 몇 번씩 주사 바늘에 찔리는 것도 한번 병원 가면 5~6시간씩 기다리는 것도 힘드시대요. 엄마는 물 한잔 혼자 떠먹으려 하지 않는 아빠의 시중을 드느라, 잘 안 드시려 하는 아빠를 따라다니며 기어이 드시게 하느라, 그러면서 쌓인 화를 참아내시느라 너무도 힘들어하시구요. 완치가 안 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닌데 전 어쩌면 좋을까요. 아빠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지 않기를, 너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며 서울에서 광주까지 왕복 8시간을 오가는 전 자꾸 힘이 빠지네요.


5.지난번에 찍었던 사진은 큰 변화는 안 보이네요. 약은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 한 달 뒤 다음 항암 치료 때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속으로 삼키는 말)

저번 MRI 찍으실 때 아빠가 감기 기운이 있으셨어요. 평소에도 숨이 조금씩 차셨는데 코 까지 막히시니 호흡 곤란이 심해지셨나 봐요, MRI 통 안에 들어갔는데 숨은 안 쉬어지고 통은 좁고 움직일 수도 없고 그래서 너무나 힘드셨대요.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속옷에 실례까지 하셨다고 해요. 그 뒤로는 6주마다 돌아오는 CT, MRI 촬영 날도 걱정이 태산이세요. 아빠는 병원 다녀오시고 나면 잠깐 한시름 놓으셨다가 며칠 후부터는 다시 다음 병원 방문을 걱정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고 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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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말하지 못하고, 또 말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때론 말로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때론 말해봤자 선생님이 해결해 주실 수 없는 문제여서.

짧은 대화 속에 말하지 못하고 끝내 삼키고 마는 수많은 말들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있다.


내 진료실에서도 가끔씩 그걸 느낄 때가 있다

보호자들의 눈빛이 잠깐 흔들리고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말을 삼키는 순간.


말해봤자 소용없는 내용들.

결국엔 환자와 보호자가 감내해야 할 아픔과 힘듦들..

꺼내봤자 선생님과 뒷 환자들에게 민폐만 되는 이야기들..


내가 보호자가 돼 보니 그들의 심정을 알겠다.

진료실에서 끝내 숨기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보호자들의 말들에 타박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해 본다.

나와버린 말들 말고도 마음속엔 말하지 못하고 또 안 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을터.

민폐인 줄 알면서도 나와 버린 말들엔 그저 끄덕여줘야겠다

할 수 있다면 위로 한마디 조심히 얹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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