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이 자주 아픈 이유

by 수영

날씨가 추워지니 소아과에 아픈 아이들의 방문이 많아졌다.

기온이 내려가면 바이러스 활동이 왕성해지고, 인체의 면역력은 떨어지고, 실내 활동이 늘어나서 바이러스 접촉 기회는 많아지니 당연한 현상이다.

해마다 같은 패턴을 겪는 소아과 의사에게는 이런 현상들이 지극히 당연하다.

실제로 소아과 의사들끼리는 농담처럼 11월을 '성수기 시작'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첫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부모에게는 당황스러운 경험이 시작된다.

몇 달째 아이의 감기가 낫지를 않는다.

어린이집에 처음 가면 아이가 감기에 자주 걸린다는 건 듣긴 했지만 이정도 일지는 몰랐다.

처음엔 콧물이 났다가 기침을 하다가 약간 좋아지려나 했더니 다시 열이 난다.

컨디션이 안 좋은 아이는 하루 종일 징징대고, 잘 먹지도 않고, 밤에도 여러 번 깬다.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부모는 잠도 잘 못 자고, 아이 짜증을 받아주다가 부모가 병이 날 지경이다.

소아과에서 처방받아 아이에게 감기약을 먹이다가, 호전이 안돼서 항생제도 먹이고, 어느 날은 입원도 하고 퇴원했는데 하루 이틀 있으니 다시 아프다. 심지어 아이가 항생제를 먹고 있는 도중에 다시 열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감기 증상

을 달고 다니는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감기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바이러스는 200종이 넘는다.

실제로 감기의 가장 흔한 원인이라고 알려진 라이노바이러스만 해도 그 종류가 160개가 넘는데 이것들이 겨울 내내 돌아가면서 유행을 한다.

이 바이러스들에 대한 면역이 생기려면 예방 접종을 맞거나, 관련된 접종이 없는 바이러스라면 앓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 수많은 감기 바이러스들 중에 접종으로 예방이 가능한 바이러스는 10종이 채 되지 않는다.

결국은 대부분의 감기는 앓고 넘어가야 면역이 생기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느껴지는 바이러스의 유행 주기는 대략 일주일이다.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이 새로운 감기에 걸렸다고 판단되는 주기 말이다.

어린아이에게 한 가지 바이러스에 대한 감기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려면 대략 10일에서 길면 14일까지 걸리는데, 그전에 다른 바이러스 유행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이전 감기의 증상이 채 없어지기도 전에 다시 감기 초기 증상이 생긴다. 발열, 목쉰 소리, 인후통, 재채기, 코막힘 등의 증상 말이다.

매일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소아과 의사야, 몇 마디 물어보고, 아이를 진찰해 보면 아이가 다시 감기에 걸렸는지 아닌지 파악이 되지만, 날마다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 아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기 증상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진료실에 들어오면 "아이가 두 달째 감기가 낫질 않아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면역이 약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부모가 놓치고 있는 뭔가가 있는 건지 걱정이 되어 이곳저곳 소아과를 돌아다니게 된다.

SNS에서 광고하는 '면역 증진 영양제'에 대해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 시기이다.


하지만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감기에 잘 걸리는 건 아이가 면역이 약해서가 아니다.

아이가 나타내는 감기 증상들은 아이 면역계가 바이러스에 져서 생기는 증상이 아니라 아이의 면역계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도중 생기는 것들이다. 바이러스가 열에 약하니 몸에서 열을 내서 대항하느라 열이 나고, 바이러스를 몸 밖으로 배출해 내느라 콧물이 나고, 가래를 배출하고 바이러스를 밀어내느라 기침을 한다.

잘 싸우고 있는 중인 거다.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도 면역 반응이 약한 아이는 증상이 거의 없으니 졸지에 '면역이 강한 아이'가 되고 몸의 면역 반응이 센 아이는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니 '면역이 약한 아이'로 취급받는다.


결국 아이들은 태어난 이후 끊임없이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서 항체를 획득해야 한다. 그렇게 한 10년쯤 싸우면 성인과 비슷한 항체량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면 어지간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거나 걸려도 하루 이틀 푹 쉬면 낫는다.

결국 아이가 계속 감기에 걸리는 것은 크는 과정인 거다.


그러니 아이가 끊임없이 아파서 걱정하는 엄마 아빠들이여.

용한 소아과를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SNS에서 광고하는 좋은 영양제를 먹여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감기약과, 항생제, 한약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써보겠다)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 안 보내고 일주일쯤 힘들게 집에 데리고 있다가 겨우 괜찮아져서 다시 보냈더니 하루 이틀 있다가 다시 콧물이 나는 건 아이의 잘못도, 부모가 뭘 놓쳐서도 아니다.

아이는 크는 중인 거다.


그런데 비단 그건 감기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첫째의 어릴 때 모습을 돌아보면 내 눈에 보였던 아이의 수많은 문제들은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다려줘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크느라 고분분투 중인 아이를 응원하고 토닥이며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는 아이의 속도대로, 그리고 아이의 방법대로 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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