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아이에게 상처를 받는다

by 수영

아이가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정보는 참 많지만

부모도 아이에게 상처를 받는다는 말은 잘 들어 본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시간도, 재정도, 노력도 아낌없이 내준다.

나 자신에게도 이만큼 투자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아이에게는 기꺼이 한다.

정말 잘 키워보고 싶다.

다른 집 아이보다, 아니 그만큼이 욕심이라면 나보다는 잘 되게 키워보고 싶다

내 아이는 내가 크면서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렸으면 좋겠고, 내가 크면서 받았던 상처들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노력하는데 아이는 참 내 맘처럼 안된다.

내 식사는 대충 때울지언정 아이 이유식은 최선을 다해 만들었는데 몇 숟갈 받아먹지도 않고 고개를 돌린다.

내 옷 언제 마지막으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기껏 사 온 아이 옷은 어디가 맘에 안 드는지 징징대며 안 입겠단다.

나는 수영장 구경도 못하고 컸는데, 여기저기 알아보고 아껴서 수영 학원 보냈더니 안 간다고 운다.

육아는 참 노력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


이제껏 살면서 뭐든 노력하면 성과가 조금씩은 있었는데 육아는 참 실망스럽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는데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다.

아이는 내 노력과 투자를 고마워하기는커녕

'내가 언제 해달라고 했냐' 한다

이럴 때마다 부모도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상처받는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아이에게 상처를 받는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냥 덮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아이가 종종 예쁘지 않다

때론 밉기도 하다.

남들이 볼 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버럭 화를 내게 된다.


얼마 전에 첫째 아이 친구네 가족과 함께 키즈카페를 갔다

키즈카페 입장 시 미끄럼방지 양말을 신어야 한다고 해서 구입해서 첫째에게 건넸다

초등학교 6학년 첫째가 양말을 신어보다가,

작아서 못 신겠다고 앉아서 짜증을 냈다.

첫째는 나와 발 사이즈가 같아서 똑같은 사이즈 양말 2개를 사서 나는 이미 하나를 신고 아이가 다른 하나를 신는 것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양말이 타이트하니 끝에서 당기지 말고 돌돌 말아서 발끝을 집어넣고 당겨보라고 말해도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왜 6학년이 돼서 양말 하나를 제대로 못 신니!''

내가 화를 버럭 내니 같이 간 친구 엄마가 놀란 눈으로 날 슬쩍 보더니 옆에 앉아서 첫째 양말을 대신 신겨준다.

나도 안다.

화낼 만큼 큰 일은 아니라는 걸.

나에게는 이 부분에 대한 상처가 있고 그 상처가 툭 건드려진 것이라는 걸.


첫째는 친구들이 쉽게 해내는 것들을 참 어려워했다.

비타민 사탕 까기, 치약 뚜껑 열기, 수동 우산 펴기 등등

이런 사소한 것들 말이다.

초등학생이 되도록 잘 못하는 게 많아서 알려주려고 하면,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본인이 잘 못하는 걸 직시하고 시도해 보는 걸 너무도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도 일상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려는 엄마와, 하지 않으려는 아이의 싸움이 몇 년 넘도록 이어지던 때였다.

최대한 비난하지 않고 친절히 가르쳐보려 노력했지만 아이는 잘 반응하지 않았고 이런 모든 순간이 내게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 알았다.

부모도 아이에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내 상처를 내가 바라보지 않고 덮기만 하면 상처는 화가 되어 아이를 공격했다.

내가 되게 별로인 엄마여서 아이에게 유치하게 상처 따위 받는다고 부정할 게 아니라, 부모도 아이에게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인정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숨겨놓은 상처가 화살이 되어 아이에게 다시 상처가 된다.

인정만 해도 매 상황에 버럭 하지 않게 된다.

내가 과거에 받았던 상처와 아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현재 아이의 문제와 연결 짓지만 않아도 좀 더 편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옆집 친구 엄마와 비슷한 눈으로 현재 아이의 문제를 너그럽게 바라봐 줄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속 상처로 아이를 공격하고 닦달하지 않고 기다리면 아이는 결국엔 큰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에 대한 기쁨은 내 상처들을 추억의 자리로 옮겨준다.

그러니 지금 내 마음속 상처를 인정해야 한다.

부모도 아이에게 상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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