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해외여행을 취소했다.
첫째 아이가 정말 간절히 원하던 여행이었다.
친구들은 1년에도 몇 번씩, 심지어는 주말에도 해외여행 간다며 어디든 해외로 나가보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에 이어 동생이 태어나면서 해외에 못 나간 지 6년이 넘긴 했다.
아주 어릴 때야 기억 자체가 안 날 테니 아이가 기억하는 해외여행이 한 번도 없는 셈이다.
중학교에 가기 전 뉴욕에 한번 가보자며 겨울 휴가를 안 가고 25년 여름에 길게 휴가를 가기로 했었다.
차곡차곡 모아 온 카드 마일리지에 남편 마일리지까지 합쳐서 무려 비즈니스 좌석을 예매도 해놨다.
마일리지 비즈니스석 예매는 하늘에 별따기래서 그거 예매해 보겠다고 예행연습까지 해보고 딱 여행 출발 360일 전날 시간 맞춰 들어가서, 아주 힘들게 표를 예매했었다.
아이는 한동안 신이 나서 비행기 안에서 뭘 먹을지, 뭘 할지를 세세히 계획하고, 뉴욕에 가면 어딜 가고 싶은지 들뜬 목소리로 말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3월에 아빠(첫째에겐 외할아버지)의 폐암이 진단되었고, 그 계획은 결국 다 취소되었다.
첫째는 매우 속상해 보였지만 속이 깊어진 아이는 티 내지 않고 말없이 참아주었다.
그렇게 24년 겨울, 25년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난 아빠의 항암 외래를 따라다니는데 그 휴가를 조금씩 사용했다.
속상한 마음을 잘 참아준 첫째가 기특하고 안쓰러워서 26년 1월에 첫째 친구네와 3박 4일 정도로 짧게 마카오에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첫째는 이번에도 신이 났다.
드디어 가게 된 해외여행! 게다가 친구와 함께라니!
또다시 기대하고 비행기에서 먹을 것들을 생각하고, 친구와 뭘 할지 계획하면서 정말 신나 했다.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아빠의 상태는 꽤나 안정적이었다.
항암 치료가 나름 효과적이었고 아빠는 날마다 운동을 나가실 만큼 컨디션도 좋으셨으니까.
그러다가 여행 한 달 남은 시점부터 갑자기 아빠의 상태가 나빠졌다.
거의 못 드시면서 몸무게가 급속도로 빠지시더니 화장실 혼자 가기도 힘들어하셨다.
결국 항암 중단을 결정하고 호스피스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게 여행 3주 전 일이었다.
여행을 취소하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여행을 기대하던 첫째와, 그리고 함께 가기로 했던 가족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두 가족의 비행기 위약금 100만 원을 우리가 내기로 하고 여행을 취소했다.
첫째는 또 속 깊게 참아냈다. 너무나 기다렸던 여행이라 정말 속상했을 텐데 티 내지 않았다.
아프신 아빠는 이 상황을 하나도 모르신다.
가족들이, 심지어 손녀까지도 정말 많은 것을 참아내고 있지만 아무도 티를 내지 않으니까.
침대에 누운 아빠의 몸을 손으로 쓸어드리며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해 참아내고 있는 것들이 있겠구나.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심지어 내가 모르는 누군가까지도.
말해봤자 소용없기에 굳이 티 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 몫의 힘듦을 참아내며 산다.
그걸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당연한 것은 아닐 터.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것은, 그 누군가의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성경 구절에 담긴 뜻을 묵상해 본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