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by 수영

엄마가 일흔이 넘어서가면서였던 것 같다.

더 이상 엄마가 내 보호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내가 힘든 일이 생기면 전화해서 징징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내 선에서 해결이 안 되는 순간이 오면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셨다.

주로는 첫째가 아플 때였다.

출근은 해야 하고 아이는 아파서 어린이집에 못 가는 상황이 생기면 엄마는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와주셨다.

멀리서 오셔야 하는 엄마도, 그리고 당분간 혼자 계실 아빠도,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오시면 엄마는 아픈 아이를 돌보고, 설거지를 하시고, 청소를 하셨다.

어릴 때부터 그랬으니 당연히 그렇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는 해마다 김장철이면 김치를 담가 서울로 부쳐주셨고 그 외에도 좋은 것이 생기면 제일 먼저 우리 집에 보내주셨다.

그렇게 난 어릴 때부터 당연히 여기던 사랑을 큰 고마움 없이 누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서울에 왔다 가시면 며칠을 앓아누워 계셨다.

그리고 한 군데, 두 군데 아픈 데가 늘어나시더니 병원에 갈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난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에 동행했다.

아주 조금씩 엄마는 나의 보호자 자리를 내려놓으셨고 자연스럽게 난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이젠 더 이상 엄마에게 힘들다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목까지 올라온 힘들었던 이야기는 꿀꺽 삼키고, 엄마의 힘든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지하철을 탈 때면 노약자석에 앉아도 되는지 고민하던 엄마는 이제 누가 봐도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엄마가 내 보호자가 아니라는 느끼는 순간마다 마음이 먹먹하다.

내 나이가 한 살 한 살 많아지는 건 아직 실감이 안 나는데, 엄마가 늙어가시는 건 한 해, 한 해가 너무나 빠르다.

이제는 동화책 속에 나오던 호호 할머니가 되어 버린 엄마를 볼 때는 가슴이 아리다.

동화책 안 할머니처럼 평화롭게 뜨개질도 하시고, 차도 마시고, 산책도 하시면 참 좋으련만, 현실 속 엄마는 자주 아프시고, 기력이 없으시고, 잘 웃지 않으시고, 자꾸 누워만 계신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르면 이별의 날이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 것 같아 너무나 두렵다.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 알 것 같은 요즘.

찬바람에 바닥을 구르는 단풍잎이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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