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보슬 꿈과 무거운 현실 사이

by 수영

말기 암 환자가 있는 집에는 절망이 눅진하게 깔린 특유의 공기가 있다.

회색 입자가 공기 사이에 섞인 듯 전등을 켜도 밝지가 않다.

아픈 아빠가 누워있는 방에서는 오래된 이불에서 나는 것 같은 큼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실제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지만 마치 코가 분위기에 맞는 냄새를 찾아낸 것도 같다.

아빠를 돌보는 엄마 방에는 공기가 없는 것만 같다.

답답하고 텅 비어 공허하다.

그렇게 난 아빠 방과 엄마 방을 왔다 갔다 하다가 한 것 없이 지쳐서 서울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13살 딸과 6살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우리 집.

아이들은 금세 내 몸에 뭍은 회색 가루들을 털어준다.

아이들의 까르르~웃음 한 번에 속절없이 날아가는 회색 빛 절망.

아이들의 빛은 그렇게 집을 밝힌다 .


아픈 아빠가 있는 친정 집에 다시 가면 나는 갑자기 꿈에서 깬다.

보슬보슬 따뜻한 꿈에서 깨서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한 사람처럼 막막해지고야 만다.

그렇게 회색 빛 공기와 큼큼한 냄새 속에 갇혀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채 다시 나는 환한 꿈 속으로 도망친다.


조만간 애들을 데리고 친정 집에 가야겠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 몇 번이면 그 집을 채우고 있던 눅진한 공기도 금세 달아나겠지.

그렇게 난 환한 꿈을 잠시 엄마 아빠에게 선물한다.

아이들이 떠나면 다시 금방 현실이 들이닥칠지라도, 잠깐의 빛도 어둠을 견딜 위로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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