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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Aug 19. 2023

제목이 끌려야 첫 문장도 읽는다

제목부터 써라 6


당신은 지금 이탈로 칼비노의 새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를 읽을 참이다.
-이탈로 칼비노,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첫 문장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제목이면서 동시에 첫 문장에서 쓰였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이, 또 배우는 사람들도 '첫 문장이 중요하다'라는 말에는 이견(異見)이 없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첫 문장을 잘 쓰려고 노력하거나 고뇌하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첫 문장을 읽기 위해서는 제목부터 접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다. 입사 원서를 내는 것을 잊고 면접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 책이나 영화가 '제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제목과 실제 작품을 감상하기까지 상당한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차'는 제목을 보고 실제로 작품을 감상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그림에서는 실제로 '무제'라는 제목을 많이 쓴다. 그렇다면 왜 책은 '무제'가 없을까?

그림은 제목보다 그림이 먼저 보인다. 미술관에 가서 감상을 할 때도 그림부터 보고 조금 더 알고 싶을 때 옆에 적힌 작은 글씨의 제목을 본다. 유명한 명화들은 우리가 제목으로 기억하기보다는 이미지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제목의 그림을 우리는 제목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림을 보고 난 후에 제목을 떠올린다. 그림은 제목보다 그림이 먼저 보이는 장르의 예술이다.

김환기 화가의 '무제'리는 작품이 2021년에 2억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제목이 없는데도 잘만 팔렸다.

노래는 어떤까? 노래도 미술과 비슷하게 노래 제목과 거의 동시에 들을 수 있다. 오히려 노래는 제목보다 후렴구를 기억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푸른 하늘 은하수~'노래 부르며 쎄쎄쎄 하는 '반달'은 노래 제목보다 시작 부분인 '푸른 하늘 은하수~'를 제목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림이나 노래는 제목 유무, 혹은 제목이 잘못 알려져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고 유명해지는데 무리가 없다. 이와 비슷하게 '시'도 제목과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우라서 무제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무제'라는 시가 유명해진 경우는 없다.


제목과 시차가 있는 예술 장르는 영화(연극, 공연 포함)와 문학(책)이다.

제목을 보고 볼지 안 볼지 결정하고 그 작품을 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또 접하고 다 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영화는 책과 달리 제목 말고도 큰 변수가 있다. 감독과 배우들이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유명 배우나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제목과 상관없이 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영화는 2시간 정도의 상영 시간 동안 작품 감상이 끝나기에 영화관으로 끌어들인 후에는 작품의 호불호를 쉽게 알 수 있다.


반면에 책은 어떤가.

제목을 보고 책을 접하고, 완독 하기까지에는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예술 장르이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완독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짧게는 일주일, 그리고 지난번 통계에서도 봤지만 80%가량의 사람은 완독 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의 마케팅과 초콜릿 마케팅하고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초콜릿은 먹으면 바로 맛을 알 수 있고, 한번 먹고 맛있으면 여러 번 재구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은 바로 어떤 책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한번 읽고 나면 재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계속 다른 사람이 사야만 매출이 올라가는 구조다. 요즘엔 재구매를 고려해서 '리커버'버전을 내기도 하지만 표지가 다르다고 책을 한 권 더 사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지는 못했다. 요즘 청소년들은 아이돌 음반 앨범에서 나오는 포토 카드가 달라서 여러 개 산다고 하는데 책은 도대체 뭘 다르게 해야 여러 개를 사는지 고민해 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판매를 올려서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려고 출판사에서는 책이 나오기 전에 홍보한다. 책이 나와서 사람들이 읽고 확산되는 시간을 되도록 좁혀 보려는 의도다. 그래서 가제본 서평단을 모집하고, 예약 판매를 하고, 책이 나오자마자 작가와의 만남을 한다. 책의 홍보는 대부분 책을 읽기 전에 이루어진다. 그래야만 최대한 빨리 사람들이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읽지 않은 채 북토크에 참여하고, 북토크 후에도 과연 책을 읽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마케팅을 못한 많은 책들은 작가들이 공들여 쓴다는 첫 문장도 읽히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게 현실이다.(울고 싶다.)


도서관을 운영할 때 도서관은 서점과 같은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니 그래도 책들이 공평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인기 있는 책들은 대기가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 외의 많은 책들은 한번 꽂힌 후 영영 독자를 만나지 못한 채 그대로 꽂혀 있었다. 정말 나라도 한 번쯤 빼서 다시 꽂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책과 책장이 일체인 가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첫 문장을 잘 써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어쨌든 독자가 책을 손에 쥐고 펼쳤다고 가정하는 것인데 이 가정부터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한출판협회에서 조사한 출판통계에 따르면 2022년 1년에 6만 권가량이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하루 167권 정도의 책이 출간되는 셈이다. 만약 내가 1년에 1권을 낸다고 하면 6만 권 중에 내 책이 '첫 문장이 익힐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첫 문장은 안 중요하다'라는 얘기가 아니다. 첫 문장이 좋아야 다음 문장도 읽고 그렇게 한 권을 읽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공들여 쓴 첫 문장이 읽히기까지는 너무 많은 장벽들이 있다. 그 장벽은 내가 허물 수 없는 것도 많다. 가장 좋은 방법은 1년에 내가 쓴 한 권만 나오는 방법이 아닐까 싶지만.

그래서 내가 가장 공들이고 고민해야 할 것은 '제목'이 아닐까. 누군가는 제목을 100개쯤 생각한다고 한다. 제목이 100개는 아니더라도 '나중에 적당히'라는 태도로는 제목마저 안 읽힐 확률이 높다. 

나의 피와 땀이 스며 있는 첫 문장을 읽히기 위해 오늘도 제목을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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