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각해보았는데 분명히 클래식을 접한 기억은 많았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보낸 피아노 학원에선 각종 연습곡을 거쳐 모차르트를 배우기도 했고, 도쿄에서 생활할 때 다시 피아노를 쳐보겠다고 피아노 학원을 등록해 학원생들과 연주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딱 그 정도의 관심이었다. 모차르트, 바흐, 쇼팽, 바그너...등의 이름은 알았지만 굳이 그들이 무슨 곡을 썼는지 세세히 알고 싶지 않았고 그들은 나에게는 '클래식 음악가'라는 큰 카테고리에 묶여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강좌에서 음악을 전공한 수강생들을 만났고, 그들이 음악적 작법으로 글을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클래식 음악이 궁금해졌다.
소나타가 1악장, 2악장, 3악장이란 것이 이야기의 3막 구조와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유튜브를 검색했고, 책을 읽었고 심지어 교향악 연주회에 가보기로 했다.
많은 공연을 가봤지만 클래식 공연은 처음이었다.
내가 갔던 공연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한화와 함께하는 2023 교향악축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6.24)>였다.
연주곡은 <멘델스존, 한여름밤의 서곡>, <슈만, 첼로협주곡 a단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 5번>이었다.
곡은 잘 몰라도 익숙한 작곡가 이름들이기에 가서 졸더라도 한번쯤은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클래식 연주회는 다른 공연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우선 같은 점이라면 '앵콜'이었다.
박수를 열심히 치면 인사를 하고 들어간 후라도 몇 번씩 다시 나와서 인사를 하고 연주를 했다.
이런 모습이 일방적인 연주와 감상이 아닌 관객과 교감하는 것, 어찌보면 당연한 것임에도 나는 클래식은 왠지 전형적인 연주만 있을 줄 알았었다.
단지 박수를 치는 모습은 대중 가수 공연과 달리 얌전했는데 그래도 열기는 충분히 느껴졌다.
다른 점은 공연 중에 기침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안내 방송에도 나온다. 가침하지 말라고.
그래서 처음엔 '기침 소리가 무슨 방해가 될까?'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연주중에 기침 소리 한번이 크게 들렸다.
아무래도 소리가 잘 들리도록 설계된 음악당 특성 때문이지 싶었다.
그래서 잠시 악장이 넘어가는 연주가 쉬는 사이가 관객석에선 참았던 기침 소리가 터져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기침을 장시간 참는다는 것, 그리고 참았던 기침을 터뜨리는 것.
평생 처음 본 풍경이었다.
아마 기침 감기에 걸린 사람이라면 공연 관람을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안내에는 인터미션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인터미션이 있었다.
2곡이 마지막 한 곡보다 짧은 곡이었고 2곡이 끝나자 연주자들도 쉬고 관객들도 밖으로 나갔다.
상황 파악이 쉽지 않았던 나는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마지막 곡이 연주되고 끝난 건가 싶었다.
물론 예습한다고 오늘 곡을 미리 유튜브에서 들어보긴 했지만 그걸 다 기억할 수는 없었다.
나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 주저하면서 인터미션인지 끝인지 파악하러 콘서트홀 밖으로 나가니까 밖에서 안내원이 몇 분까지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오라고 안내를 해주는 바람에 '인터미션'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믈론 다른 공연과 다른 분위기를 지금까지 나열했지만 연주는 근사했고 감동이었다.
100명이 넘는 연주가가 각종 악기로 만들어 내는 교향악은 집단 예술의 최고였다.
인간의 갈등으로 전쟁까지 일어나는 마당에 오로지 음악으로 협업하여 이런 집단 예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인간은 모여 싸울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해야 한다고.
직접 듣는 교향악의 매력에 홀딱 빠져서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 모르고 듣다가 앵콜까지 몇 곡을 들었을 때 지휘자가 누군가를 소개했다.
000 호른 연주자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그 말에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하는 호른 연주자의 얼굴은 딱 봐도 더 이상 젊지 않았다.
지휘자가 그의 이름을 말했는지 내가 듣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박수 소리와 지휘자의 설명이 엇갈리며 '마지막'이란 말만 선명히 들렸다.
교향곡에서는 지휘자와 유명한 협연자는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룹의 일원일 뿐이다. 그 호른 연주자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연주자'였다.
하지만 오늘 그는 '마지막'이라는 부사가 붙어 조금은 특별해진 것 같았다.
그의 마지막 연주와 나의 '첫 관람'이 오버랩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첫날이 다른 누군가에겐 마지막날이라는 말처럼.
나는 누구의 연주보다 그의 마지막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교향악단에서 몇 십년 호른을 연주했을 그의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나 또한 관람객의 한 명으로 박수를 보냈다.
연주와 박수가 교감하는 그 자리.
나는 오늘 관람한 첫 공연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마지막 호른 연주자'를 기억할 것이다. 이름 모를 연주자에게 이렇게 이름을 붙여서.
그리고 그 날 나는 바이올린, 첼로 등의 몇몇 악기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처음 본 악기들이 많았고, 호른도 그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