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커피와 천사가 나왔습니다
영은과 연락이 끊긴 것은 영은이가 보육원을 나간 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을 나가야 하지만 대학을 가면 보육원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콩매니저가 대학을 간 이유는 영은이 때문이기도 했다. 영은을 두고 혼자 떠날 수 없어서.
그런데 1년이 지나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영은은 대학을 안가겠다고 했고 먼저 보육원을 나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영은은 죽은 사람처럼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납치가 되었다거나 아니면 돈 많은 남자를 만나나 신분을 세탁했다는 극과 극의 소문이 돌았다. 그렇지만 콩매니저는 그것보다 더 최악의 상태를 예상하고 있어서 늘 꿰매지 못한 상처가 피를 흘리고 있는 듯한 통증을 안고 살고 있었다.
나은이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 하마터면 ‘영은아!’라고 부를 뻔 했고, 심지어 이름 한 글자가 같았다. 다만 예진과의 대화를 들으니 어렸을 때 엄마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보아 영은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나은이 문밖에서 떨고 있는 걸 보니, 영은이 마지막으로 보육원을 떠나던 날, 한참을 보육원 앞에서 서있던 그 때가 떠올라 당장 안으로 들어오라고 몸부터 녹이라고 했다.
나은은 카페에 들어서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지 패딩을 벗지 못한채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콩매니저는 나은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생각했다. 그것은 친절과 진심의 거리만큼이나 가깝고도 멀었다.
나은은 오늘 카페에 처음 온 손님이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왔을 때는 손님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처럼 주문을 기다리는 주인같은 태도를 취할 수도 없었다.
콩매니저는 지난 몇 달간 ‘손님’외에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매니저가 만났던 사람들은 항상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었고, 첫 인사는 ‘안녕하세요? 커피와 천사입니다.’였다. 그리고 주문을 하거나 주문에 대한 이야기, 조금 더 이어져봤자 메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등등. 하지만 지금까지 불편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매뉴얼 대로 말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콩매니저에게 매뉴얼 이상을 원하지도 않았다. 마치 누르면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처럼, 말만 하면 커피가 나오는 로봇처럼 생각했다.
물론 천사라는 VR을 설명해야 했지만 그것도 매뉴얼이었다.
나은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콩매니저는 주방으로 갔다. 더 이상 올 손님이 없다는 생각에 설거지와 정리를 시작했다.
주방에서 정리를 하며 흘낏 나은을 보니 이제 좀 몸이 녹았는지 패딩을 벗고 있었다. 패딩에서 팔을 빼는 그 모습에서 콩매니저는 또 영은의 가늘고 긴 팔이 떠올랐다. 어쩌면 따뜻해서 패딩을 벗었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 좀 더 머물러도 된다는 안심인 것 같았다.
그제야 콩매니저는 오늘 밤 나은이 갈 곳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시외 터미널은 이미 버스가 끊겼을 것이고, 가까운 모텔이라고 해도 여기서 차로 최소 30분쯤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이런 콩매니저의 걱정을 알았는지 나은은 핸드폰에서 검색을 한 내용을 보며 말했다.
“내일 첫 차가 다섯시 오십분에 있네요.”
나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은이 찾고 있던 것은 이곳을 가장 빨리 떠나는 방법이었다.
콩매니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잠시 생각했다.
“터미널까지 도보 20분이라는데 택시를 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앱으로 택시 예약을 할까요?”
나은은 가장 빨리 떠나기 위한 보조 교통수단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첫차 시간이면 카페 문 열기전이라 데려다 줄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순간 콩매니저는 하나의 선행 조건을 얘기하는 셈이 되었다. 나은이 밤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콩매니저가 새벽에 데려다 줄 수 있으니까.
“그러면 너무 미안한데요. 초면에 폐를 너무 많이 끼쳐요.”
“그럼, 여기서 알바라도 하실래요?”
콩매니저는 나은의 미안함을 상쇄하려고 농담을 건넸다.
“알바요?”
역시나 나은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아직 알바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요.”
콩매니저의 설명에 나은이 한번 더 진지하게 말했다.
“저 꿈인데…..”
“꿈이요?”
“엄마가 지금도 식당을 하세요.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나면 혼자 식당하는 엄마를 위해 식당일을 도와주는데 어느 날 옆 집에 예쁜 카페가 생긴 거에요. 차라리 그 집 알바가 하고 싶었어요. 앞치마부터 다르잖아요. 제가 입은 건 생존이라면 그 집 알바는 패션이었어요. 구질구질하고 음식 냄새나는 이 앞치마를 벗고 저 빳빳한 냄새라고 해봤자 커피 원두 냄새나 베어 있는 저 앞치마를 입고 싶다. 그랬어요. 매니저님, 매니저님은 어떻게 카페를 하게 된 거에요?”
콩매니저는 모처럼 긴 밤이 찾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영은이를 만난다면 이렇게 긴 밤을 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서로 아무 말 못하는 또 다른 긴 밤이 될까. 평소라면 이 시간은 ‘끝’이라는 단어와 어울렸는데 오늘 만큼은 ‘시작’과 잘 어울렸다.
“내가 끓여주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콩매니저는 자기도 모르게 긴 이야기를 시작해버리고 말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