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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n 10. 2021

Ep.14_새벽 5시의 출근길

호주 카페 출근 중 겪은 기묘한 일

새벽 5시, 해가 겨우 빼꼼 고개를 내미는 시간. 가로등 몇 개에 겨우 의지하는 어둠 속에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겨우 5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인적이 드문 어둠에는 온몸이 서늘해지곤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대문을 나선 지 몇 발짝 안 가 달리기 시작했다. 사력을 다해 달리는데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무언가도 나를 향해 사력을 다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순간 너무 무서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을 속력을 내었고 순식간에 무언가와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낄낄거리며 소리 지르는 소리와 함께. 대체 뭐였을까. 온몸에 소름이 쫙 올라왔다. 당장 뒤돌아 볼 수가 없어서 조금 달린 후 살짝 뒤를 돌았는데, 어쩐 일인지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후에는 앞만 보고 계속 달렸다. 빛이 좀 더 비추는 기차역이 보일 때까지. 새벽 카페 출근을 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였다.



호주에 가면 카페에서 꼭 일해봐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이제까지 해 온 알바는 카페 알바뿐인 데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이 이유가 되었다. 호주 커피가 유명하다는 건너 들은 이야기도 한몫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커피에 손을 놓은 탓에 출국 몇 개월 전부터 라테아트와 추출 수업도 들었다. 몇 개월 안에 배운 스킬을 능수능란하게 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커피와 더 가까워지고, 커피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점점 커피의 맛을 알아가던 중에 출국날이 성큼 다가왔다. 출국만 하면 플랫 화이트를 멋들어지게 만들어 단골손님들에게 웃음과 함께 건네는 멋진 바리스타가 되어있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품던 때였다.


선생님이 도움으로 겨우겨우 만들어내던 그림.


역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바리스타 일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아무래도 카페에서 일한 지가 오래되기도 했고, 호주에서 일한 경험도 없으니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나를 뽑으려는 거 같지 않았다. 이력서를 내는 것에 점점 지치니, 누군가들처럼 경력을 조금 부풀려서라도 일단 일을 시작해볼까 하는 유혹이 밀려왔다. 근데 왠 걸 호주에서는 일을 시작할 때 실기 테스트 같은 트라이얼(Trial)이라는 과정이 있는데, 그 기간에 일을 못하면 그냥 잘리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친구가 그렇게 일을 잘렸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거짓 경력이 통하려면 실력으로라도 증명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는 경력단절 바리스타일 뿐인걸... 잠깐의 트레이닝이 필요한걸... 에라이 수업들은 거 다 소용없다고 속으로 한탄에 한탄을 하던 때였다.



호주 생활 3개월 차. 하고 있던 식당 일에는 점점 익숙해졌고, 그렇게 카페일을 포기하게 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계속 구인 공고에 기웃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맘에 드는 카페를 보면 분위기를 살피며 혹시 사람은 안 필요한지 힐끔거리기 일쑤였다. 식당에서도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녔기에, 좀 더 일하며 돈도 좀 더 모으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커졌다. 그렇게 나는 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호주 바리스타는 되어봐야지 하는 일념 하에.


그날도 깔끔한 흰 셔츠에 재킷을 챙겨 입고, 검은 서류 케이스를 오른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A카페로 걸어가는 길에는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언제나 편안한 모습이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역시 너무 잘 보이려고 하면 그런 걸까.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시도하며 분주하게 마감을 하는 카페로 들어갔다. 나의 서류를 받는 이들의 표정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나중에 연락 주겠다는 조금은 딱딱한 말투의 답변을 듣고 나서는 데까지 3분이나 걸렸을까. 서류를 만들고, 깔끔하게 단장을 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니 그 순간이 조금 허무해졌다. 역시 여기도 아니구나.



"그날 레쥬메 주고 간 사람들 중에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깔끔한 스타일과 손님들을 대하는 표정과 태도가 좋았어요"


그러나 아닌 게 아니었다. 한 번의 Trial과 3번 정도의 인터뷰를 통해 A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꽤 여러 관문이 있었구나. 나의 서투른 실력 때문에 고민이 많이 되었지만, 결국은 위와 같은 이유로 뽑게 되었다는 비하인드를 들었다. 서투른 만큼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니 일주일 동안 오픈부터 마감까지 풀 근무를 하자는 제안과 함께. 그렇게 깔끔한 분위기에 맛도 좋은 브런치 카페에서의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물론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이었으므로 원래 일하던 식당에서의 근무 스케줄도 함께 이루어져야 했다. 보통 식당의 근무는 오후 4-5시부터 저녁 10시 마감까지였고, 카페 근무는 아침 6시부터 3시 30분 정도였다. 카페에서부터 식당까지의 거리는 기차로 30분 정도였으니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휴식이 주어졌다. 그 마저도 카페일이 조금 늦게 끝나면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다. 일주일만 버티자 하던 것이 트레이닝 기간이 늘어나며 점점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쌓아야 할 실력은 잘 안 쌓이고 실수와 피로만 쌓이니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고민도 함께 쌓여가는 동안에는 걸으며 샌드위치로 우걱우걱 끼니를 때우고, 기차에서 헤드뱅잉을 하며 졸다 옆 사람에게 "Sorry"를 외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채워져가고 있었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15시간 정도였다. 호주 가면 그렇게들 한다던 투잡, 쓰리잡이 이렇게 혹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나 생각하며, 나는 그럴 재목이 아닌가 싶었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며 그 생활을 지속하니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그렇게 새벽 출근길 속에 기이한 형체와 맞닥뜨린 것이다. 과연 무엇이었을까. 돌아보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그것. 겁은 많아도 헛것을 본 적도, 가위도 한번 눌려본 적도 없던 내게 일어난 기묘한 일.



그 일이 있은 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식당일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매니저님이 날 붙잡으며 제안을 하나 해오셨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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