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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Mar 05. 2022

소련의 검은 그림자

이고르 2년 간의 여행 기록 <우크라이나 이야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리는 21세기에 참혹한 전쟁의 증인이 되어 버렸다.


전세계가 그리 잘 알지 못했던 한 나라,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안전을 기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었던 차에 파주 <평화를 품은 집> 책방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만화작가. 2006년 러시아 푸틴 정권 아래에서 저널리스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가 피살당한 사건에 충격받은 저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의 그림자를 추적해 그래픽 노블 시리즈로 그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이고르는 자신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범죄스릴러 영화 <퍼펙트 넘버, 파이브>감독 자격으로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내한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만나며 옛 소련의 짙은 그림자를 파헤쳤는데 우크라이나의 침울한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그림체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개인사를 잘 그려내 만화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다가왔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유럽 최대의 곡창지대라는 우크라이나에서 1932~1933년 사이에 일어난, '홀로도모르'라고 불리는 대기근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대기근은 단순히 자연 재해 때문이 아니었다.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을 우려한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밀을 수출할 계획을 세웠다. '대(對)쿨라크 투쟁' 라는 이름을 붙인 이 계획은 우크라이나 농장의 집단화와 개인 소유권 포기였다. '쿨라크'는 원래는 '지주'란 뜻이지만 우크라이나 국민 중 80%가 농부이거나 작은 땅의 주인이었으므로 암소 두 마리만 있어도 '쿨라크'로 간주되었다.


소련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국외로 추방하고 소위 반혁명 분자들을 제거하면서 농장을 집단화했다. 기근이 들이닥쳐도 우크라이나 농민들을 정해진 양을 징발당해야 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우크라이나에 붙여지는 유럽 최대 곡창지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그 곡식을 맘대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1932~1933년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쫓기고 감시당하며 대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흉년이 들었지만 곡식을 내야했고 어쩔 수 없이 집에 곡식을 숨겼다. 곡식을 숨긴 게 발각될 때는 가혹한 처벌이 잇따랐다.


소련은 심지어 국경 일부를 봉쇄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소련의 만행에 의한 것이었다. 책에서 전하는, 당시 기록으로 남아있는 증언은 참혹하다.



1933년 3월 5일. 마예프스크 지역.


우리 경찰관 중 한 명이 호루쉬 마을을 순찰하던 중에 A. V. 멜라츠쿤 집단농장에 속해 있는 한 집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서 손이 피로 물든 아이 두 명을 보았다고 합니다. 7살 아이에게 무슨 일인지 질문하자, 방금 막 말을 잡아먹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썩어가는 고기 한 조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가족이 말 사체를 파낸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14살 아이는 썩은 말의 구운 뼈를 먹은 뒤 끔찍한 복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볼쇼이 레페티친스키 지역.


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용품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돌아다닌 지 몇 시간 만에 354건의 (다양한 식물 섭취에 따른)중독 사례를 기록했습니다. 아이들은 24시간 안에, 어른들은 3~5일 후에 죽음에 이릅니다. 썩고 있는 말,개, 고양이 등의 동물 고기를 섭취하는 일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비소코폴스크와 멜리토폴 지역 끝에서 우리는 식인 행위 두 건을 접수했습니다. 노보프라시스크 지역에서는 인육을 팔려고 일어난 살인 사건 두 건이 보고되었습니다.


비소코폴스크 지역. 2월 16일, 자그라도프카에서 가난한 농부 가족의 12살짜리 아들은 젊은 니콜라이가 죽었습니다 어머니 F와 이웃인 안나S는 시신을 조각내 만든 음식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시신은 몸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머리와 발, 어깨 한 쪽, 손바닥, 척추, 그리고 갈비뼈 몇 개가 없어졌습니다. 남은 신체 부위는 이즈바(러시아 시골의 둥글고 조그만 집)의 하층토에서 찾아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먹을 게 너무나 부족해서 벌인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아이 3명이 남아 있지만 전부 굶주림으로 배만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 가족에게 도움이 시급합니다. 지역부 대장 크라우클리스


이 시기(1933년)에 우리는 시신 섭취와 식인 행위 건이 새롭게 일어났음을 보고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10번 이상 경고를 보냅니다. 우리는 식인 행위가 '풍습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지인을 죽이거나 행인을 살해하는 드의 상습적이고 의심 가는 식인 건을 찾아냈습니다.




저자는 여행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3명의 살아온 삶을 전하고 있. 개인이 시대에 따라 어떤 삶을 사는가가 우크라이나의 척박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는 스탈린 시절 매년 3백 리터의 우유와 50킬로그램의 고기, 3백 개의 달걀을 집단농장에 내야했다고 말했다. 이 할당량은 1가구 기준으로 가족 수와는 상관이 없었다. 니콜라이의 어머니는 혼자서 생산해낼 수 없는 할당량으로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야만 했다.


할당량을 징발하려는 소련 당국과 농민들의 대립은 극에 달했고 소련은 곡식을 숨기는 게 나쁘다는 선전을 해댔다. 이 선전에 빠져들어 자신의 아빠를 고발한 소년이 친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소련에 적극 협조한 미국 언론인도 있었다. 윌터 듀란티라는 미국 타임지의 모스크바 특파원이었다. 그는 스탈린을 미화했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두고 '우크라이나의 대풍년이 농민들을 시험대에 올렸다. 지금 기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습다. 우크라이나의 중심지를 차로 여행해 본다면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는 식의 기사로 퓰리처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상황을 다룬 영화로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미스터 존스>가 있다)



84세의 마리아 이바노프나는 영하 20도의 11월에 길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결혼 후 딸은 대학에 들어가 핵 기술자까지 되었지만 북한에서 핵 프로젝트 기술자로 일했던 딸 부부는 건강을 다 비리고 돌아와 연금에 의존해 생활했고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딸 부부가 아무 일을 할 수 없기에 그녀는 추위를 견뎌가며 연금, 그리고 구걸로 연명하고 있다.


흐루쇼프 시절에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만 흰 빵을 살 수 있었기에 소화기기 나빠 검은 빵을 소화시킬 수 없었음에도 돈을 주고도 흰 빵을 살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는 집단농장 시절이 좋았다고 회상한다. 소련의 철수후 갑자기 맞닥뜨린 자본주의가 우크라이나의 물가를 올려놓고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기근도 집단농장도, 그리고 갑작스런 자본주의도 그 속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추천사에서 박원용 교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련 공산당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소련 공산당은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기본 생계수단인 농산물을 빼앗아 외국에 수출함으로써 산업화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농산물 수출 국가라는 타이틀을 자랑삼아 떠벌였지만 소련 공산당의 참모습은 인민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학살자'와 다를 바 없었다.

<우크라이나 이야기>중 박원용 교수 추천사 - <우크라이나 이야기>와 우크라이나 현대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해 이제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프다.


개개인의 삶 속에 녹아든 현대사의 비극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박원용 교수의 추천사마따나 이 책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최근의 갈등이 장기간의 역사적 맥락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매우 효과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부디 우크라이나에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또 우크라이나가 진정한 독립국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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