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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Jan 21. 2021

감정일기, 나흘간의 마음수련

말로하기 힘들때는 글로 적어보세요.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나서 ‘지금 내가 이 말을 괜히 한 게 아닐까?’ 후회할 때가 있다. 한참 하소연을 하다 보면 기분이 나지기는커녕 오히려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어디에도 말 못 할 고민거리를 어렵게 털어놓았다가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누군가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점점 불편해지고 그때부터 우리는 감정을 숨기기 시작한다. 


가끔은 우리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공감받아 마땅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로 말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거나 어쩔 수 없이 상황을 회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은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절대로 그냥 없어지는 법이 없다. 잠시 잠잠해진 것 같다가도 어떤 식으로든 다시 나타난다. 이따금 필요 이상으로 화가 치솟거나 갑자기 슬퍼지는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저널 테라피(journal therapy)는 이처럼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감정을 다룰 때 특히 유용한 감정처리의 기술이다.  


저널 테라피의 창시자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는 20년간 글쓰기를 통한 정서 치료를 연구했는데 힘든 경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하루에 20분씩 연속해서 3~4일간 글로 쓰면 감정조절 능력이 향상됨은 물론 신체의 면역기능이 좋아지고 학습능력이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다(pennebaker,1996,2004). 저널테라피를 시행한 3개월 이후부터 1년간 실험대상을 관찰한 결과,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자세히 적은 사람들은 다른 주제로 글을 쓴 통제집단에 비해 병원에 방문하는 횟수가 43%적었고 인지처리와 학습능력이 월등하게 향상되었다. 이후 페니베이커의 ‘표현적 글쓰기’를 발전시킨 다양한 형태의 저널 치료가 임상에서도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저널 테라피는 일기와 비슷하지만 사건 자체를 기술하기보다는 내면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한다.


저널 테라피는 상담사 앞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거나 코치에게 난감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심리적 부담이 적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살피고 해결하면서 자기효능감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혼자서 글을 쓰다보면 아무리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라도 슬그머니 자기편을 들어주려는 마음이 생기거나 반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단호해지는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을 수용하는 경험이 쌓이다보면 나중에는 굳이 펜과 종이를 꺼내지 않아도 자신의 기분을 알아채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새로운 사고 패턴이 만들어진다. 우울할 때마다 상담 센터에 일일이 예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한 번에 20분 이상 쓸 것  
    3~4일을 연속하여 쓸 것  
    문법과 필체에 신경쓰지 않을 것  
    감정을 최대한 상세히 기술할 것  
    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다른 관점을 적용해 볼 것  



사진출처 : http://zannilouise.com/the-myth-of-the-lonesome-writer/



다만, 써놓은 글이 그럴듯하다고 해서 잘 다듬어 문장으로 남기겠다는 욕심은 내려놓자. 일부 기법은 ‘공감경험’을 위하여 마지막에 타인과 글을 공유하기를 권하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혼자 쓰면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문장을 교정하지 않고 다른 관점으로 읽어보는 것이 좋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아도 좋고, 자신과 같은 고민을 가진 누군가를 떠올려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당시에 상대방의 입장은 어땠을지도 조심스럽게 헤아려보자. 상대방에게 무조건 유리한 입장을 내주지 않아도 좋다. ‘아, 그랬구나.’로 시작하는 꼬리 글로 가상의 인물에게 피드백을 남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쓴 글을 여러가지 관점으로 다시 읽다보면 글을 쓸 때의 그 마음이 문득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때도 가공하지 않은 투박한 그대로의 감정을 적어두면 자신을 돌아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저널을 쓰고 난 직후에 곧바로 후련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화가 나거나 눈물이 쏟아졌다가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올 때쯤이면 마음이 다시 차분해진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영화감독과 배우가 시나리오를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이 직접 겪은 분노와 슬픔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마찬가지로 저널을 쓰고 나서 한동안 분이 풀리지 않거나 하염없이 눈물이 나기도한다. 이런 복잡한 감정은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치유된다. 회복을 위한 글쓰기는 다이어리에 그날의 일들을 빼곡하게 적어두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다 쓴 뒤에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을 정리하겠다고 쓰기 시작한 글이 오히려 긁어부스럼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가 감정 몰입이 지나쳐서 힘들다면 글쓰기를 바로 중단하는 것이 좋다. 내가 처음 저널 테라피를 경험한 것은 ‘아티스트웨이’라는 모임에서 ‘모닝 페이지’를 쓸 때였는데, 처음 몇 주간은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매일 아침이 정말 말 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겠다고 오기를 부렸는데 지나고 보니 ‘모르는 게 병’이었다. 이후에 찾아낸 대부분의 자료들은 감정이 과도하게 북받치는 경우 글쓰기를 바로 중단하기를 권했다. 글이든 말이든 감정만 늘어놓으면 전개가 극으로 치닫는다. 이때는 객관적인 ‘사실’과 ‘생각’을 함께 적으면 상황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생각’은 ‘사실’에 대한 나의 해석을 말하는데, 이전 단락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https://brunch.co.kr/@jinon/65 에 이와 관련한 간단한 사례를 적어두었다.


혼자 감정을 꺼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누군가와 그것을 나누면 치유에 가속도가 붙는다. 불의의 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감정노출의 정서적 치유효과를 연구한 한 실험이 있다. 이 실험에서 배우자를 잃은 슬픔에 관해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대조군에비해 빠르게 감정을 회복했으며, 이듬해에는 오히려 더 건강해지기까지 했다. 말미에 맥빠지는 말일지 모르지만 말 할 수 있다면 글로 쓰지 않아도 좋다.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에게 먼저 솔직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괜찮다고 말해보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노트를 펼치고 한참동안 볼펜을 굴려야 겨우겨우 한마디씩 한 문장씩 속마음이 밀려나온다. 


‘아티스트웨이’를 함께 보낸 동료들은 그때 모이던 아지트를 ‘safety zone (안전지대)’이라고 불렀다. 힘든 기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용기를 준다. 이 가까움은 물리적인 거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와 심리적 안전지대를 공유할 때 ‘저널 테라피’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누군가에게 말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는 이미 솔직했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수용했다는 의미다. 그러면 이 세상 누구보다 진심으로 내 편인 ‘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저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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