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해 보면 그날의 기분과 날씨, 풍광에 따라 산책의 만족도가 엄청 달라진다. 기분이 우울하여 여러 잡념 속에서 무거운 걸음으로 산책을 시작해도 상쾌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면 머리가 맑아지면서 복잡한 감정을 잊고 즐거운 산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날씨가 열악하더라도 마음이 즐거우면 몸도 가벼워져 나쁘지 않은 산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분과 날씨가 모두 엉망일 때는 99% 산책은 중단되고 만다.
이 기준에서 볼 때 오늘의 산책 성공률은 50% 이하였다. 요즘 업무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은 지친 상태라 괴상한 악몽까지 꾸는 시점이고, 산책 시간대도 5시 30분으로 조금 늦어 곧 어둠이 밀려와 스산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가을에 저녁 산책을 시도했다가 낭패를 본 나는 (글 [가을 저녁의 서정, 그러나] 참조) 가을에는 필히 한낮 산책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볼 일이 있어 조금 늦게 산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번과 같은 낭패를 보지 않고자 한 30분 정도로 짧은 산책을 예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은 최근의 산책 중 최고의 산책이 되었다.
낙동강 하구의 습지는 많은 생물들의 보금자리로 온갖 철새와 벌레, 물고기, 조개류 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생명의 보고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오염물질들을 걸러주는 자연의 정화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일주일 동안 묵힌 나의 심란한 감정들을 힘겹게 매고 와 강물 속에 툭 던져 넣으면 강물은 습지의 진득한 물속으로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여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서 내게 다시 돌려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말랑해진 감정 조각을 가볍게 들고 한 주의 시작을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석양에 붉어진 강물의 반짝이는 주름들이 내게 더욱 위로가 되었다. 그건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그랬다. 강물은 내게 어머니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문득 바라본 하늘은 그야말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스름한 저녁 하늘 속 노란 광채가 내게 팔을 펼치며 이리 오라는 듯 나를 환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위안과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때 붉은 강물 아래로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가 물 흐르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강둑을 넘어 방파제 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순간 떠올랐다.
지금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구나!
이 어스름한, 낮도 밤도 아닌 묘한 시간대,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하듯 느껴지는 이 평화로움. (물론 개와 늑대의 시간의 원래 뜻은 정 반대이다. 개와 늑대를 구별하기 힘든 어스름한 그래서 위험한 시간!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대의 이 곳의 풍광과 나의 감정은 그랬다.)
마치 인간 세상 속에서 사는 이종의 존재인 개가, 그 인간의 모습을 닮으려 발버둥 치다 자신의 고향인 늑대의 세상을 바라보며 얻는 편안함 같은 것일까? 잘난 인간들 속에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하려 발버둥 치다 지친 나의 영혼이 바로 그 검은 고양이처럼, 방파제를 넘어 강 아래 습지에 몸을 숨기고 내 몸에 가득 찬 허위들을 씻어내고 한 마리 야생의 늑대로 돌아온 듯 오롯이 나의 영혼이 이 길을 물 흐르듯 걷는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 이 강물과 이 하늘과 물아일체가 되어 무념무상의 세상으로 빠져 버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