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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04. 2022

나이 듦이 주는 변화에 대하여

  나는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멋지게 장식된 음식이 나오는 식당에서 사람들은 수저보다 휴대폰을 먼저 들곤 하지만, 나는 수저를 쥔 채 얼른 사진을 찍기만을 기다린다. 또 멋진 장소에 가면 사람들은 그곳의 풍경을, 그리고 풍경 속의 자신을 휴대폰에 담기 바쁘지만 나는 잠시 찍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도저히 담을 자신이 없고, 인터넷에 찾아보면 누군가가 찍어놓은 더 멋진 사진이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 그저 눈에 담는 쪽을 택해 버린다. 하지만, 사진 찍기를 참을 수 없는 것이 꼭 하나 있다. 그것은 길가의 꽃이다. 길을 가다 평범한 꽃무지를 만나면 스쳐 지나가다가도 결국 돌아와 사진을 찍고야 만다.  언제부턴가 시작된 나의 이런 모습이 어쩌면 나이 듦의 증거인가 싶어 나의 입가엔 웃음과 씁쓸함이 함께 묻어난다.


  사람이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살다 보면 깨닫는다. 노력해서 어느 정도 변한  같다가도 결국 숨기고 감추는 기술이 늘었을 뿐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나이 들어감은 원치 않아도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번째가 나의 경우, 꽃을 좋아하는 것이다. 요즘 꽃집 앞을 지나면 꽃을 사고 싶어서 가게 앞에서 우물쭈물 대다 돌아온다.  길섶에 피어있는 풀꽃을 보면  쪼그만한 녀석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 어찌나 대견하고 이뻐 보이는지 모른다. 꽃은 식물의 삶에 있어 대체로 짧게 스쳐 지나가는 식물의 청춘인 셈이다.  순간의 화려함이 지나면 꽃은 조용히 사그라지고 줄기와 잎만이 오랫동안 남는다.  속성에 대한 아쉬움이 중년의 나에게 본능적인 끌림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 나이 듦으로 인한  하나의 변화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자유로움이다. 그간 나를 옭아매었던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하였지만, 나의 성향상  바뀌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본연의 모습이 수시로 나타났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자,  뭔가  자신을 둘러싼 제도나 편견, 관습들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사회적인 시선들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자아에 가까워진다. 외모에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간다. 사회적인 기준과 평균이 아닌, 내가 원하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  전에는 끊임없이 나를 다그치며 남들과 비교했다.   기준에 부합하고 남들 눈에 나아져 보여라고.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까 조심하던 눈빛에서 그냥 담담히 나 자신을 보여주고,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자 낯선이와의 첫 만남의 자리일지라도 예전과 달리 특별히 부담스럽지 않아졌다.

예전에는 어떤 의견을 말하는 자리가 주어졌을 때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숨이 가빠오고 말이 빨라졌다. 지금은 긴장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많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또 누군가로부터 당황스러운 말을 들었을 때도 예전에는 어쩔 줄 몰라했다면, 지금은 좀 더 차분하게 대응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워지는 속성은 꽃에 대한 애정과 어느 정도 연결되는 것 같다. 그전에는 뭔가 인위적인 것들이 더 예쁘고 좋았지만, 지금은 자연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자신을 드러내는 작은 민들레나 이름 없는 풀꽃이 더 예쁜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자 유난스레 애쓰지 않지만 더할 나위 없이 예쁜 작은 풀꽃들처럼, 뭔가 되려고 애쓰던 나의 젊은 날들도 나만의 아름다움에 즐거이 만족하며 유유자적하였으면 더 좋았을까? 아니면 나이 듦이 있고서야 알게 되는 지금이 자연스러운 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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