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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May 19. 2021

2. 몰타 일상(1)

2-5. 몰타에서의 흔한 하루

영어 학원의 수업을 일대일 개인 과외로 바꿨다. 지금의 수업 방법도 나쁘지 않지만 선생님과 쉼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과외 형식의 수업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낸 학원비에서 조정이 이루어지는 거라 수업시간이 단축되었고 일주일에 수업도 3일만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개인 시간 여유 더 많아졌다.


영어회화 과외는 난생처음이라 엄청 긴장되었다.


'말 한마디 못하면 어쩌지... 아니야! 틀려도 자신 있게 영어로 말해보자. 돈이 얼만데.'


교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밝은 인상의 여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인사를 하고 간단한 소개 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저 영어로 수업 내내 대화하는 게 전부는데, 내 영어 실력을 알기라도 하는 듯 선생님은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대화를 주도해 나가셨다. 알아듣는 단어와 문장이 많아질수록 자신감도 점점 높아져 짧은 단어부터 긴 문장까지 쉬지 않고 말하게 되었다. 문법은 다 틀렸겠지만 그저 대화가 통한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만 없애고자 온 학원이었는데 한 달 후엔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얼큰한 고추장찌개가 며칠 전부터 생각이 났다. 고추장은 한국에서 가져온 터라 채소와 고기만 더 넣고 끓이면 되었는데 요리를 알지 못하는 나는 하나하나 엄마한테 물어가며 겨우겨우 재료를 준비했다. 애호박, 감자, 양파를 구입해서 손질하고 썰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고기는 뭘 어떻게 살지 몰라 패스하고 그냥 참치를 고기대용으로 사서 넣었다. 대충 다 넣고 끓였다. 난생처음 끓여본 국이었다. 나름 뿌듯했다. 두 번째라 제법 잘 된 고슬고슬한 냄비밥과 함께 고추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았다. 오우?! 정말 맛있는데? 뭔가 깊은 맛이 약간 부족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처음 해 본 음식 치고는 훌륭했다. 덕분에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고작 국하나 끓이는데도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데 그 많은 음식을 엄마는 어찌 그렇게 잘하실까? 늦은 밤에도 내가 뭐가 먹고 싶다 하면 엄마는 금방 만들어주시곤 하셨었는데 그런 엄마가 대단해 보이는 것과 동시에 복잡하고 번거로운 음식을 기꺼이 해주셨던 마음이 느껴져 감사했다.


여하튼 이날 어렵게 고추장찌개를 만들고는 다시는 몰타에서 혼자 요리하지 않기로 했다. 장 보는 것도 음식 손질하고 만드는 것도 설거지도 모두 다 번거롭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만 이때까진 몰랐지. 삼시 세끼 새로운 음식을 요구하는 아들내미 덕분에 매번 장을 보고 재료 손질을 해서 '매일' 음식을 하게 될 줄은. 우리 엄마가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아들! 고마워! 덕분에 엄마 음식 솜씨가 날로 좋아지고 있어.'


날씨가 좋아 숙소 뒤편에 있는 바다로 나가보았다. 수도 발레타가 보이는 숙소 앞바다도 좋지만 이 곳 바다는 색깔이 너무 예뻐 자주 오고 싶은 곳이다. 해안 따라 늘어서 있는 호텔을 지나 작은 광장 앞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 짙푸른 파랑 바다. 지중해. 른 하늘과 어우러져 한 장의 그림 같다. 여기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까지 더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왔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좋아하는 젤리도 사고 요거트도 샀다. 이곳에 와서 요거트는 종류별로 다 사서 먹고 있지만 터키에서 먹었던 그 맛있는 요거트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몰타 빵은 터키 빵에 비해 맛이 없어서 꼭 딸기잼과 함께 먹어야 했다.


늦은 저녁엔 숙소 앞 카페 가서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마셨다. 카페에 편히 앉아 일기 쓰고, 생각하고, 은 여행 계획도 짜 본다.  한국에선 무엇이 그리 바빠 이런 여유조차 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런 여유도 내겐 사치라며 외면했던 건 아닐까? 


몰타에 온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되고 익숙해져서 편안해졌다. 아직까진 꿈만 같고, 이 생활이 즐겁고 행복다. 회사에서 한 달 휴가를 받아 영어 수업을 들으며 휴양을 하러 몰타에 온 어느 노부부처럼 나도 그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숙소에서 만난 몰타 체류기간이 7개월이 된 동생은 이제는 몰타 생활이 너무 지루해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생활을 왜 포기하려 하냐며 의아해했지만 좋은 건 한 달이라고 했다. 몰타에서 특별히 할 게 없어서 그렇단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곳에 머무는 것이 꿈만 같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 시간들이 길어지면 또 다른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것이라 영원히 좋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매일매일을 감사함으로 살아야 행복하지 않을까? 바쁘고 힘들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매일 내게 주어지는 소소한 일상 속 작은 감사를 내가 느끼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러면 한국에 돌아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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