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들은 물질로 삶을 영위해 간다. 그녀들은 숨을 참은 체 묵묵히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그곳엔 전복이며 문어며 뿔소라며 다양한 해삼물이 있다. 숨이 막혀오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어 가쁜 숨을 내쉰다.
"호이 호이잇~"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해녀들의 삶이 담긴 숨비소리다.
실제로 숨비소리를 들어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참은 숨을 쉰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경쾌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마치 돌고래가 놀며 노래를 부르듯 높고 청아하다. 참았던 숨을 쉬기에 힘들 텐데 노랫소리 같다니... 아이러니하다.
"숨비소리 한 번에 자식을 키웠고, 숨비소리 두 번에 부모를 모셨다."
해녀들의 삶이 담긴 이 말을 보는 순간 가슴속이 먹먹해졌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도 그녀들처럼 각자의 숨비소리로 자식을 키우고 부모를 모시며 살아간다. 때론 스스로를 위해... '한숨'이라는 숨비소리.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 되었다는 생각. 한때 아빠는 ATM기계라는 웃픈 가십거리 말이 있었다. 맡은 의무와 책임을 정신없이 하다 보니 어느샌가 기계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 중 하나가 '숨'이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신체활동. 숨은 평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숨은 투명하고 몽글몽글한 물방울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비록 물방울처럼 이쁘진 않지만 나도 숨을 매일 본다. 내 숨은 그녀들과 다르게 뿌옇고 흩날리는 모습이다. 담배연기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담배 한 개비는 5분의 수명단축이 있다고 한다. 생을 태워 살아있음의 증거인 숨을 본다니 이것 또한 아이러니하다.
건축가 유현준은 자신의 저서 『공간의 미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물을 죽여서 그 피를 흘리고 고기를 태워서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하는 예식을 치르는 것이 종교의 주 행사였다. 당시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하늘에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중력을 거슬러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연기밖에 없었다." - 『공간의 미래』 중에서.
예부터 인간은 자신의 소망과 바람을 연기라는 방법으로 하늘로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다. 나도 별반 다른 건 없어 보인다. 담배연기에 여러 마음을 담아 한숨이란 풀무질로 하늘로 올려 보내니.
그녀들이 바다를 물질을 하듯 난 일상을 물질한다. 나의 일상이라는 바다 아래에도 수많은 해삼물들이 가득하다. 두 딸아이의 성장하는 모습, 품속의 사직서를 봉인 해제해야 되나라는 고뇌, 출퇴근 길 갑작스레 찾아오는 생각,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술잔을 부딪히며 즐기는 정다운 이들과의 대화, 뜻하지 않던 경험들, 귀와 마음을 즐겁고 편하게 해주는 음악 그리고 수시로 팩폭을 날리는 친구인 책.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풍요로운 바다다. 문득 이 신선한 재료들로 요리를 만들어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브런치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싶었다. 아~ 문제가 있다. 요리솜씨가 형편없다.
"뭐 날 것도 괜찮겠지."
"뭐 정 안되면 MSG라도 듬뿍 넣지."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요리 솜씨도 좋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Gaemi작가님이 주신 감사한 선물. 고맙습니다.
오늘도 일상이라는 바다 밑으로 내려가 본다. 서툰 물질. 짧은 숨. 수확물이 변변치 않다. 그래도 계속 물질을 하다 보면 점점 테왁도 채워지겠지. 그리고 요리솜씨도 조금 더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