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는 트라우마

나를 알아차림

by 햇살나무

오십에 내면아이와 깊이 마주하고 있다. 어린 시절 인정받지 못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성인이 된 내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가끔씩 인정받지 못해 불편한 아이가 자꾸 튀어나오지만, 감정이 올라오는 횟수가 줄고 있다. 인정받지 못해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화가 나는 감정, 두려움으로 나타난다면, 트라우마는 몸으로 드러난다.


나에게 트라우마가 없는 줄 알았다. 고급심리치료 과제를 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주 작은 조각난 몇 가지를 찾아냈다. 그 작은 트라우마들로 인해 비슷한 이미지나 상황에서 몸이 경직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내 몸이 그렇게 반응했구나!’ 주위사람들이 알게 되면 비로소 나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몸으로 나타나는 트라우마


『트라우마와 몸』에서 팻 오그던과 동료들은 몸의 지혜로운 마음을 일깨울 수 있는 깊은 체험적 통찰에 대해 말했다. 지금 이 순간 경험을 주의 깊게 알아차리면서 몸에 집중하면 통합의 길이 열리면서 치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버셀 A. 반데르 콜크는 “과거에 만들어진 신체적, 운동신경학적 반응에 대한 개인사적 이해가 없다면 트라우마화된 사람들의 감정은 적절한 반응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과거에서 시작되어 완료되지 못한 그 증상들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수치심과 당황스러움의 원천이 된다.”라고 말한다.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상황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 생긴 호르몬 및 운동신경 반응을 다시 일으킨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 뺨을 맞은 적이 있다.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는 않는다. 선생님 얼굴도 정확하지 않지만 비슷한 윤곽을 가진 사람을 보면 말문이 닫힌다. 두려움 때문이다. 2학년 때 전학을 갔다. 5학년 담임선생님을 어려워했다. 뺨을 때린 선생님과 비슷한 이미지였다. 무표정하고 무서운 얼굴이다. 아직도 생생하다. 5학년 선생님 앞에서는 몸이 굳었다. 무뚝뚝하게 크고 거친 목소리로 말을 하면, 표정이 굳어지고 입이 열리지 않았다. 두려움이다. 비슷한 이미지나 상황 앞에 서면 나를 해코지할 것이라는 두려운 감정이 생긴다. 누군가가 큰 소리를 치면 몸이 경직되고 말문이 닫히는 이유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아이한테 ‘짝 잃은 외기러기’라고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체육시간이었다. 운동장에 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가운데 조금 늦게 나갔다. 아이들 무리 쪽으로 걸어가던 나를 보면서 그 아이가 ‘짝 잃은 외기러기’라고 말했다. 비웃음도 섞여있었다. 앞 뒤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척 당황스러웠다. 몸이 굳어졌다. 얼굴도 울그락 불그락. 그 자리에 멈춰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굳었던 몸의 감각과 비웃는 그 아이의 표정이 생생하다.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쪽으로 가지 못했다. 아무 말도 못 했다.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당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점점 더 굳어졌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서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


치유의 시작, 알아차림


누가 나의 아이디어를 가로챈 적이 있다. 사업계획 발표 자리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인 양 보고를 한 것이다. 믿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해를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사람에 대한 불신도 생겼다. 함부로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겠다는 불신이 삶의 부분에 스며들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이후로 나를 더 내보이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뒤처질까 봐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이 밀려온 것이다. 몸이 열리지 않는다. 어깨를 펴고 당당해야 하는데 양 어깨를 좁히며 쭈뼛쭈뼛한 느낌이다. 불신의 감정이 생길 때 몸이 열리지 않게 되었다.


오래전 악의적인 소문으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소문의 근원은 함께 일하는 동료였다. 열심히 할수록 지위를 이용해 나를 짓밟을 수 있겠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가 중요한 상황에서 소문에 의해 평가되고, 행동이 제약되었다. 불안했다. 한동안 사람들을 멀리했다. 회피한 것이다. 자존감도 낮아졌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소문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데 시간을 썼다. 이 후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워졌다. 다소 냉소적일 때도 있다. 뒷담화하는 자리를 피하게 된다. 앞에서의 모습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모습이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동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기 힘들어졌다. 필요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생기게 된 이유다.


이러한 나의 경험들은 뇌에 각인이 되어있다.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몸이 작동하게 된다. 나의 이런 트라우마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치유해야 함을 느낀다. 내가 알았으니 조금씩 트라우마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치유해야 할 것이다. 몸으로 나타나는 트라우마는 누구든 있을 수 있다. 몸의 변화를 알아차림으로써 치유가 시작된다.


어떤 상황에서 몸이 불편해지고 경직되는지 살펴보자. 깨끗한 물에 흙을 넣었더니 흙탕물이 되었다. 다시 깨끗한 물로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에 들어간 흙을 아무리 빼내려고 해도 다시 처음처럼 깨끗해지지 않는다. 맑은 물을 계속해서 퍼부을 때 물은 다시 맑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트라우마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있었던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트라우마 상황에서 좋은 기억을 아주 많이 심어주는 거다. 그렇게 좋은 기억을 만들다 보면 아주 작았던 트라우마는 언제 있었는지도 모르게 좋은 기억으로 다시 재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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