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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고, 다시보고, 뒤집어보고

#의심하기 #다르게 보기 #뒤집어 보기 #역발상 #문제의 재설정

다시보기, 의심하기, 뒤집기



바르셀로나 시내 레이알 광장에 있는 ‘가우디 가로등’.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26살에 만든 첫 작품이었다고.



“이건 꼭 옷걸이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의 레이알 광장에서 ‘가우디 가로등’을 본 민 군의 첫 소감입니다.

 

가우디가 이 가로등을 만든 모티프가 정말 ‘거꾸로 된 옷걸이’였던 건 아니겠지만,

 

다른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 역시 기존 방식에 커다란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천재 건축가였죠.





‘자연주의 건축가’로서 가우디는 “내 스승은 곧 자연”이라고 할 정도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자연의 모습을 닮은 독창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나무와 잎사귀, 파도, 인체 등 자연의 형상을 응용한 표현, 태양광을 이용한 창문과 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한 건물 내부, 그가 전통적인 건축 방식을 거부하는 역발상과 창조 정신으로 빚어낸 구엘 공원, 카사 밀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7개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돌을 다듬지도 않고 짓다니, 채석장인가?’(카사 밀라)

‘이건 뼈다귀로 지은 해골의 집이다’(카사 바트요),

‘혹시 마약을 하는 것은 아닌가’(카사 칼베트)

 


그의 작품은 당시 기준에는 너무나 대담하고 파격적이라 하나같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높은 평가를 받는 대작으로 남았습니다.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만나는 가우디의 작품들. 카사 밀라 앞에서 사진 한 장, 길 건너 맞은 편 카사 바트요도 감상하고.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가 사업가 바트요의 의뢰로 설계한 1907년 작품으로 이 건물의 메인 테마는 지중해 ‘바다’다. 바깥은 물결 치는 바다를, 내부는 바닷속을 표현했다고 한다. 길 건너 오르막에는 카사 밀라가 나타난다. 이 작품은 191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메인 테마는 ‘산’이다. 투구를 쓴 것 같은 옥상 굴뚝이 인상적인 건물. 교차로를 사이로 대각선으로 마주한 두 건물이 각각 산과 바다를 테마로 했다니 절묘한 균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의 건물에서 취하는 직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굴곡진 곡선의 우아함과 부드러움에 누구나 첫눈에 반하고 만다.

 




‘역발상逆發想,’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가 되는 생각을 해 냄. 또는 그 생각.

 

 

1991년, 일본 최대 사과 생산지 아오모리 현에 강력한 태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전체 작물의 90%가 땅바닥에 떨어져 팔 수 없을 지경이 됐어요.

 

주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한 사람이 이런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남은 10%의 사과를 태풍에도 끄떡없이 떨어지지 않은 ‘합격 사과’로 포장해 수험생에게 팔면 어떨까?”

 

결과는 대성공.

 

합격 사과는 일반 사과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려 태풍으로 인한 손실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가 됐습니다.

 



단순히 거꾸로 뒤집어보는 것에서 출발해 다수의 관점과 견해에 의도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보는 것까지 역발상은 다양한 형태로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겨울에나 찾을 제품을 한여름에 파는 생각의 반전, 약점을 숨기려 하기 보다 오히려 대놓고 부각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기업의 ‘역발상 마케팅’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죽 쑨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수험생에겐 금기로 여겨져 수능 때마다 매출이 떨어지던 한 죽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불낙죽’불고기낙지 죽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중의적 의미를 파생시킨을 앞세워 ‘오히려 속이 편해 시험을 잘 본다’는 메시지로 극복한 홍보 사례처럼요.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 각종 과일과 견과류, 햄, 치즈 등 먹거리가 싸다.

 

                                                  


이런 전복, 뒤집기를 통한 발상의 전환은

 

늘 보면서도 무심결에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던 것을 마치 난생 처음 접하는 것처럼 새롭게 바라보는 것, 또 주어진 생각의 틀을 무조건 덮어 놓고 믿기 전에 일단 한 번 의심해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기발한 발명품,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더 많이 팔기 위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또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아이디어가 이런 새롭게 바라보기뒤집어 생각해 보기로 탄생했습니다.

 

처음 겪는데도 마치 예전에 보고 경험한 것처럼 느끼는 것을 기시감旣視感, 프랑스어로 ‘데자뷔déjà vu’라고 하죠?

 

그런데 『역발상의 법칙』(황금가지, 2003)의 저자 로버트 서턴은 반대로 이미 수백 번 보고 경험했는데도 마치 처음 접하는 것처럼 대하는 ‘뷔자데vujà dé 이야기합니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당연해 보이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기가 뷔자데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조건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자면 내 고리타분한 생각을 ‘틀 지우고 있는’ 것들이 뭔지 따져보고, 그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게 막고 있다면 어떻게든 깨트리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는 동일한 사건이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표현 방식에 따라 판단과 선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흔한 예로, 컵에 반쯤 차 있는 물을 ‘절반밖에 없다’고 할 것인지, ‘절반이나 있다’고 할 것인지의 문제가 바로 이 프레이밍 효과의 결과입니다.

 

‘생존율 90%’의 수술법과 ‘사망률 10%’의 수술법, 똑같은 시술 방법인데 각각을 환자들에게 제안했더니 동의하는 비율이 달라지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죠.

 

판에 박힌 고정관념과 결별하고, 발상을 전환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면 이미 주어진 프레임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 나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프레이밍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문제 설정’이 달라지면, 해법도 달라지기 때문이죠.

 

                                                      




특색 없는 다수보다 ‘현명한 소수’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일단 한 번 뒤집어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그만큼 중요합니다.

 

특히, 어떤 뚜렷한 목적을 좇아 달려가는 집단, 조직 안에 있을 때는 더욱 그래요.

 

예를 들어, 회사에 부정적인 어떤 일이 발생하면 우선은 어떻게 일을 덮을지, 피해를 최소화할지가 지상 과제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해결책은 간단한 경우가 많아요.

 

당장의 비판이 두려워 거짓말을 하고, 진정성 없는 사과로 대충 넘어가려 하기보다 문제를 핵심을 제대로 짚고,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편이 낫죠.

 

그런데도 수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하지를 않아요. 당장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적에만 온통 집중을 빼앗겨 시야가 좁아지고, 임시 방편만 떠올리게 되는 거죠.


“어떻게 하면 회사의 평판에 입을 타격, 이미지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모두가 이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피해 고객에게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게 뭘까?”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

 

“이게 바깥에 알려지면 어떡하지?” 걱정할 때,

오히려 “이걸 지금 자진해서 솔직하게 알린다면?”이라고

뒤집어 생각해 보는 것.

 

의외로 그런 역발상을 통해 좋은 대안, 참신한 해결책이 찾아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민 군이 그린 바르셀로나의 상징물들. 성가족성당과 도마뱀.






 

일상에서 찾는 전복의 계기

 


“아빠, 근데 왜 사람은 꼭 태어나서 한 살, 두 살, 이렇게 나이가 들어야 해? 태어났을 때 100살이다가, 99, 98… 이렇게 거꾸로 내려오면 안 돼?”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일찍 하늘나라에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며 어느 날 민 군이 제게 한 말입니다.

 

‘참 기발한 발상이다’ 생각하고 이렇게 말해 줬지요.

 

“오! 그래~ 그거 재미있는 생각인데? 그럼 점점 더 어려져서 마지막엔 아기가 되는 건가? 어, 근데… 0살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야?”

 



바르셀로나 숙소 호텔 수영장에서 물놀이 중.



‘왜 꼭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종종 하는 투정 섞인 반발의 표현.

 

이게 어른에게 반기를 들고 거부하는 말투라고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쩌면 오히려 더 장려해야 할 말인지도 몰라요.

 

‘왜 꼭 자전거는 바퀴가 둘이어야 할까?’,

‘왜 저렇게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

‘왜 밥 먹기 전에 사탕을 먹지 말라는 거야?’,

‘왜 꼭 5일이나 학교를 가고 이틀만 쉬어야 해?’

 


아이들이 갖는 수많은 의문들에 대해 ‘당연한 걸 왜 물어’ 하는 식으로 억눌러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더는 의심하고, 거꾸로 생각하는 일을 멈춰버리고 말 거에요.

 

아이를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항상 의심해 보고, 또 뒤집어보고 하는 습관을 들여주려면 일상에서 더 많은 계기를 찾아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아이와 끝말잇기 놀이나, 추리 퀴즈를 풀며 함께 노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죠.



한자어로 된 새로운 말을 접할 때도 한 자, 한 자 뜯어 보고, 또 순서를 뒤바꿔 보는 것도 생각의 지평을 틔워 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습관’이라는 한자어를 거꾸로 하면 ‘관습’이 되죠.

 

똑같이 익힐 습, 익숙할 관, 두 자를 쓰고 있지만


습관習慣은 ‘여러 번 되풀이함으로써 저절로 익고 굳어진 행동’이나 ‘치우쳐서 고치기 어렵게 된 성질’,

관습慣習은 비슷하게 ‘개인의 버릇’을 말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사회의 습관’을 뜻하는 말,


이렇게 뜻이 달라집니다.

 


‘성숙成熟’과 ‘숙성熟成, ‘회사會社’와 ‘사회社會’, ‘대접待接’과 ‘접대接待’, ‘발휘發揮’와 ‘휘발揮發’처럼

그런 예가 수도 없이 많아요.

 

한자어를 낱자로 쪼개어 보는 것을 ‘파자破字’라고 하는데요, 의미 요소를 나누어 봄으로써 그 말의 근원도 알 수 있고, 말뜻을 헤아려 봄으로써 더 잘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죠.

 

어른들도 어떤 관용적인 표현을 쓰면서도 실제 그 의미는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이와 놀이처럼 이런 활동을 하면 어려서부터 언어 학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갑자기 휴강이 되면 빈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겠는가?”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이렇게 물었답니다.


한 그룹에는 아무런 전제 없이 그냥 질문을 던졌고, 다른 한 그룹에는 간단한 조건을 달았죠. “자, 여러분이 일곱 살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렇게요.

 

단순히 ‘내가 7살 유치원생’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만으로도 훨씬 창의성과 상상력이 넘치는 답변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사실 아이들은 원래 엉뚱한(?) 방식으로 세상을 뒤집어 보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직 머리가 굳지 않아 말랑말랑하기 때문이죠. 슬프게도, 자라면서 그 능력이 점점 줄어들어요.

 

내 아이의 유연한 머리를 더 오래도록 지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민 군과 ‘거꾸로 먹는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어떤 블로그 글에서 놀랍게도 실제 나이를 ‘거꾸로’ 세는 법을 가진 부족이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됐어요.

 

미얀마의 작은 섬의 ‘올랑 사키아’라는 부족인데요.

 

갓 태어난 아기의 나이를 60세라고 하고 매년 한 살씩 줄여가는 거죠. 그렇게 60년이 지나면 0세가 되잖아요? 나이가 다 줄어 0세가 되면, 그 때는 다시 10살을 더해주고 거기서부터 또 다시 1년에 한 살씩 줄여나간다 해요. 0살 이후부터는 ‘덤’으로 얻은 삶이 되는 셈입니다.


어쩌면 우리말 표현에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말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 야경 투어 중.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 야경 투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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