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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승우 Jun 05. 2024

베니스 비엔날레 포커스 온 (2)

지난 4월 20일,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Foreigners Everywhere’(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큐레이터 :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이다. 비엔날레에는 단 하나의 전시만 있는 게 아니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큐레이팅한 본전시는 두 개의 공간, 지아르디니(Giardini)와 아르세날레(Arsenale)에서 열리지만, 그 외에도 국가관 전시와 병행 전시(collateral event)가 있다. 국가관 전시는 말 그대로 국가별로 마련된 관에서 각 국가가 선정한 아티스트가 전시하는 것이며 병행 전시는 기업이나 기관이 아티스트들을 선정해서 하는 전시이다. 올해 90개의 국가가 국가관 전시에 참여했으며, 30개 이상의 병행 전시가 열린다. 이렇듯 본 전시 외에도 볼 전시가 많기에 그중에 주목할 만한 전시를 선별해 소개하려 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포커스 온 2편’에서는 국가 전시와 병행 전시 중 본 전시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열리지만 그럼에도 볼 만한 전시를 소개한다. 때로는 작업 방식이 너무 직접적이거나 과장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시사점이 있는 전시로 선정했다.


그레나다(Grenada)관 - ‘No man is island’(어떤 인간도 섬이 아니다) 전시


많은 국제관 전시나 병행 전시처럼 그레나다관 전시는 본 전시의 주제를 모티프로 삼아 아티스트들을 선정했다. 특히 인간의 정체성은 자신이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 그래서 인간은 항상 스스로 변하는, 스스로에게 낯선 이방인일 수도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시하는 아티스트들은 인간이 다른 사람, 자연,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자기 극복을 하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유방암 수술 끝에 절제한 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수에린 로우 체 퉁(Suelin Low Chew Tung)의 전시가 눈에 띈다. 이 전시를 추천하는 건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며, 표현 방식도 다른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여있어 흥미롭기 때문이다. 마치 제목 ‘No man is island’는 그냥 전시를 위한 구실에 불과한 듯하다.



불가리아관 - ‘The Neighbours’(이웃) 전시


불가리아관은 세 명의 아티스트(크라시미라 부트세바, 릴리아 소포우조바, 쥴리안 세히리안)가 함께 한 프로젝트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에 들어가는 관객을 맞이하는 건 아늑한 방과 아늑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불쾌한 냄새이다. 평범해 보이는 가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전화기 위에 돌이 놓여있거나 책장 안에 돌이 있거나, 식탁은 흙으로 덮여 있고 침대보 밑에는 지푸라기가 놓여있는 식이다. 또 갑자기 재봉틀이 혼자 돌아가는가 하면 텔레비전이 꺼지기도 하고, 스피커에서 말소리가 나기도 한다. 작업은 공산주의 시절, 불가리아에서 정치 탄압을 당했던 생존자들의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다. 아티스트들은 연구 활동과 자료 수집을 하며 생존자들의 집을 재구성했고 그들이 했던 인터뷰, 현장 녹음을 스피커로 재생했다. 불가리아관도 이번 본 전시의 취지에 맞게 불가리아 안의 불가리아 국적을 가진 이방인의 공간을 표현한다.



아르메니아관 - ‘Echo’(메아리) 전시


아티스트 니나 켐취안(Nina Khemchyan)이 아르메니아관에 설치작품 ‘Echo’을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바로 만화같이 그린 그림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어 관객은 고민 없이 순서대로 그림을 보면 된다. 외설, 폭력적인 장면이 눈에 띄기 때문에, 그림 자체는 만화 같은데 뭔가 불쾌하다. 그림을 다 보고 안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함께, 공중에 매달려 돌아가는 여러 개의 커다란 원형체가 관객을 맞이한다. 원형체 위에는 알 수 없는 문자로 뭔가 써있다. 이 설치 작업을 지나 마지막으로 가면 금빛으로 칠해진 원형체의 물건 하나가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처음의 그림은 기독교의 칠정 죄를 표현하는 것이며 들리는 노래는 중세 아르메니아의 성가이고, 원형 위에 쓰여 있는 건 아르메니아어로 쓰여 있는 성가의 텍스트이다. 전시는 시노그레피가 강해 극적인 효과를 내며 아르메니아 고유의 문화와 현대 미술의 표현 방법이 잘 섞여 있다. 


병행 전시 ‘Andrezej Wroblewski (1927-1957) – in the first person’(안드레이 브로블레프스키 – 일인칭 시점으로) 


스타크 가족 재단(Stark Family Foundation)과 스타크 컬렉션(Stark collection)에서 안드레이 브로블레프스키 전시를 개최한다. 안드레이 브로블레프스키는 폴란드에서는 폴란드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번 전시가 눈에 띈다. 브로플레프스키는 이차대전 후, 자신이 목격한 사건들을 많이 그렸으며 작품 중 특히 사형 집행을 하는 그림이 유명하다. 한참 추상화가 유행이던 유럽에서 브로플레프스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 구상화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아방가르드한 미술 학파들이 창안해 낸 것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일인칭 시점으로’ 전시에서는 짧은 생을 살다간 브로블레프스키의 작품 중 사형 집행을 묘사한 그림을 비롯한 주요 작품을 전시한다. 



동티모르 국가관 – ‘KISS AND DON’T TELL’(입 맞추어라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전시


동티모르 국가관에서 열리는 마리아 마데이라(Maria Madeira)의 설치 작업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식민지 시대 동티모르 여성들의 착취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업은 단순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때가 탄 듯한 벽이 있고 그 밑에 벽을 따라 흘러내린 듯한 붉은 흙이 바닥에 고여있다. 전시장 옆의 문으로 들어가면 마데이라가 했던 퍼포먼스 비디오가 상영 중이다. 마데이라는 울면서 노래하는데, 마치 용서를 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대신해서 우는 것 같기도 하다. 마데이라는 어렸을 적 인도네시아의 침략을 피해 포르투갈로 망명을 가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했다. 동티모르가 해방되고 모국으로 돌아온 첫날, 자려고 누운 방 벽 무릎 높이에 많은 입술 자국이 있는 걸 보게 된다. 다음 날, 동티모르가 식민지였을 때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동티모르 여성들에게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벽에 입술 자국을 남기게 시켰다는 걸 알게 되고, 마데이라는 이걸 설치 작업으로 남긴다.



짐바브웨 국가관 – ‘UNDONE‘(끝나지 않은) 전시


전시는 짐바브웨 특유의 문화에 있는 개념 중 ‘Kududunuka’라는 개념을 모티프로 삼는다. 이 개념은 지금 세계를 풀어 헤친다는 뜻이며 그래서 전시 ‘Undone’은 지금 세계를 넘어선 미래 세계를 상상해 보기를 제안한다. 전시 입구에 알록달록하게 만든, 아이가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귀여운 문이 관객을 미래 세계로 안내한다. 미래 세계의 사물들은 형태가 낯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사물들로 이루어졌다. 특히 모파트 타카디와(Moffat Takadiwa)의 작업이 특이하다. 그가 설치해 놓은 것을 멀리서 보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형태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지금 세계에서 쓰고 있는 사물, 아니 쓰임새가 다한 사물들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울리는 소리가 나는 공중에 떠 있는 메가폰 형태의 작업은 다 쓴 치약 통으로 만들어졌다. 쓰임이 다한 것들로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는 점에서 Kududunuka의 개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업이 아닐까 ? 새로운 것은 지금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타카디와의 작업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주기에, 이 전시를 주목한다.



병행 프로젝트 – ‘The All African People’s Consulate’(아프리카인 영사관) 


모든 아프리카인 공동체(All African People’s Community)가 카스텔로 갤러리(Castello Gallery)에서 프로젝트 ‘The All African People’s Consulate’를 진행한다. 갤러리에 들어가면 스태프가 다가와서 친절하게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여기는 ‘아프리카인 영사관’입니다. 간단한 인터뷰를 하시고 비자를 만들어드려요. 아프리카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는 비자입니다.’ 물론 진짜 비자는 아니다. 아프리카인 영사관 자체가 상상 속의 영사관이다. 인터뷰를 하니 아프리카 조상이 있는지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하고 이름, 성, 국적 등을 기재하니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비자를 발급해준다. 만일 아프리카 조상이 있거나 실제 아프리카인이면 여권을 준다고 한다. 아프리카인 공동체와 아프리카인 영사관, 이 둘 다 희망을 담아 만든 상상의 단체와 기관이다. 하물며 아프리카인 공동체 설립일은 미래인 2031년 8월이며 이날부터 공동체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어떤 곳이든 갈 수 있다. 공동체 사람이 아니어도 쉽게 비자를 받아 아프리카를 돌아다닐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런 게 가능한 세상이면 어떤 세상일지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적어도 2024년 11월까지 카스텔로 갤러리라는 공간은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상상의 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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