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행이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마울 지경이다. 난 걔가 정말 죽은줄 알았잖아. 몇 시간 동안 연락이 안되길래 정말 한강에라도 뛰어든지 알았더니만. 다행히 한강은 가지 않고 그냥 답답해서 영화관에 갔었대. 몇 시간 동안 전화 돌리면서 초조하게 찾았던 우리 생각은 전혀 안하고 말이야. 그래도 잘 한 거지, 뭐, 이런 날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괜찮지. 살아있으니 정말 다행인 거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중간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었대, 춭석요구서 받고나서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안와서 일이 그냥 순탄히 끝나는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흘만에 전화가 왔다지 뭐야, 그래서 영화보다가 중간에 나왔대. 이런 상황에 모르는 전화가 왔으니 말 안해도 비디오지 뭐야... 그리고 경찰들은 주말에 쉬지도 않는다니. 일요일에 전화가 웬말이야. .
대체 걔가 뭔 죄가 있다니. 그냥 잘 지나가다가 엉덩이에 손이 닿은 걸 가지고 그 여자는 왜 고소를 했대니. 나라도 정말 만나서 따지고 싶다, 대체 왜 그런 거냐고.
하긴 그 녀석 요즘 취업부터 집문제, 돈문제 하나 같이 잘 되는 게 없는데 그런 문제까지 겪으니, 이런 때 그 녀석이 한강에 갔을 거라 생각하는 게 큰 무리는 아니지.
아무튼 담당형사가 그러는데 그 여자는 신고하자마자 그 녀석이랑 무조건 만나서 합의를 하자고 그랬대. 뭔가 이상하지 않아? 여러 가지 절차는 무시하고 그냥 그 사람 얼굴을 먼저 보고 싶으니 합의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니...... 뭔가 냄새가 나지 않아? 그래서 그 녀석은 그 여자가 꽃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녀석도 신고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대. 어디서 누군가의 엉덩이를 치고 나서 기분이 싸한 느낌이 들었다니까. 그 바가 어딘지도 알겠고 시간도 기억날 것 같대. 그리고 그 여자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난대. 그냥 멍하니 길거리만 바라보면서 길을 가로막고 있었대. 좁은 길목을 뚫고 나가려면 손이 어딘가에 닿을 수도 있지. 그런 일로 고소당할 게 아니잖아. 그리고 그 녀석이랑 평생을 보고 지내봐서 아는데 절대 일부러 그런 일을 할 친구가 아니야.
흠... 그렇긴 하지, 사람을 뼛속까지 어떻게 알겠어. 우리가 안 보는 때 뭘하고 돌아다니는지 어떻게 알겠다만....
내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경찰서에 다 털어놓으러 가는 길이라 했으니 돌아오는대로 어떻게 됐는지 한번 물어보기나 해보자구.
그나저나 얼마 전 무당이 준 부적을 일부러 버렸다지 아마. 그 녀석은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천연덕 스럽게 낄낄 웃더라. 그리고 전도사 한다는 다른 친구는 물론 내막을 잘 알지는 못하는데도 요즘 교회를 등한시하고 십일조를 내지 않아서 하나님이 자기 품으로 돌아오라는 계시를 보내는 거라고 ,누가 봐도 대충 던지는 소리를 해댄 거지.불교 다니는 친구는 뭐라고 했을까. 전생에 업을 쌓지 못해서 그랬다고 할라나? 천주교와 원불교나 천도교에선 뭐라고 말했을까. 길거리에서 도를 아시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조상에게 돈 바치고 기도하라고 끌고 갔었겠지.
걔가 종교에 관심이 좀 많았어. 그런데 정작 제대로 믿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 신을 너무 사랑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고 싶지 않다나.......
정작 자신을 선택해 주지 않은 신 때문에 그 녀석이 그런 고초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지, 하라 크리슈나? 모하메드? 석가모니? 예수? 조상신? 에이..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는데 그런 말 같잖은 상상은 .......
이런 말 해봐야 뭐하겠어. 엄연히 하찮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형사 사건에 신들이 왜 관여를 하겠어, 풀어나가야 할 당사자는 그 녀석과 그 여자뿐인 거잖아. 경찰서 가서 쫄지나 말아야 할 텐데, 객기라곤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항상 주눅 들어사는 놈이잖아. 어쩌면 그 경찰이 신에 현현일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어쩔 수 없을걸. 부디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우리 교회는 십일조 따위는 관심 없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