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고작 36개월 아이와 사이가 나쁠 것이 뭐가 있겠냐먀는, 괜히 그런 날이 있다. 딸이 쓸데없는 것으로 고집을 부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주지 못하면 우리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아침에는 괜찮았다. 딸은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찍 일어나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방으로 다가왔다. 쓰던 글을 덮고 아이를 맞이했다. 옷을 갈아입히고, 아침을 챙기고, 등원 준비와 출근 준비를 동시에 해내며 아이를 보냈다.
문제는 하원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딱히 기분이 좋은 날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시간이 흘러 퇴근. 회사원 모드를 끄고 엄마 모드를 켜며, 평범한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날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고, 입동을 앞둔 가을이 급하게 겨울이 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추운 날씨에 대비해 담요를 챙겨갔다. 아이가 하원을 하고, 나는 아이의 몸에 이불을 둘러주었다. 아이는 놀이터에 가서 놀겠다고 말했다. 평소에 꼭 놀던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오늘이람. 오늘은 너무 추워서 밖에서 놀면 감기에 걸린다며 집으로 가자고 설득했다.
그러다 하원을 하러 오는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아이는 친구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 속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친구가 나왔다. 함께 놀이터에서 놀려는 것을 겨우 설득해 주차장으로 가는데 아이 친구가 미니 약과를 주었다. 우리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젤리를 주었다. 친구와 기분 좋게 헤어졌다. 차를 타고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던 약과와 젤리를 먹으며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리기 싫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벗어던진 신발도 안 신겠다고 하고, 아이는 '약과 더 먹고 싶어요'만 무한 반복하며 징징거렸다. 아, 나는 이게 참 견디기 힘들다. 아이는 왜 모든 말을 징징거리면서 할까? 제발 그냥 말했으면 좋겠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담백하게 뜻만 전달해 줬으면 좋겠다. 요구사항을 들어줄 때까지 같은 문장을 반복하며 징징거리는 아이에게 그날도 지쳐가고 있었다.
"안 돼. 저녁 먹어야 해. 지금은 사러 갈 수 없어. 저녁 먹고 나서 생각해 볼게."
김치찌개와 굴전으로 저녁메뉴를 정하고 아이에게는 얼려두었던 볶음밥을 데워 파프리카와 함께 내주었다. 먹기 싫단다. 너무 많단다. 또 끊임없는 징징 모드. 옆에서 먹는 것을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남편은 소파에 누워 요지부동이다. 찌개를 끓이랴 아이를 챙기랴 분주한 마음에 아이에게 또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먹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어. 시간 지나면 치워버릴 거야. 그때까지 알아서 먹어."
타이머까지 옆에 세팅해 두려고 집안을 둘러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아 다시 찌개를 끓이러 주방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다. 잘 참고 살고 있는데, 어제는 유독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대체 왜 여자가 밥당번인 것일까? 같은 회사에서 같은 시간 동안 비슷한 월급을 받고 일해도 밥은 여자가 해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러한 대전제가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되고 궁금했다.
'밖에서 나가서 사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일은 너 좋으라고 하는 일'이라던 충격적인 남편의 말이 오버랩되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자의 의무는 과연 무엇일까. 남편은 운전을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럼 장거리 이동을 할 때 기차를 예매하는 것은 남편 좋으라고 하는 일인가? 비행기는? 그 마저도 다 내가 예약하는데? 매일 밥을 하는 것보다 가끔 운전을 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저녁을 만드는 동안 아이는 다행히 징징거리지 않고 밥을 먹었다. 어른의 식탁이 차려지고, 아까 많아서 못 먹겠다던 볶음밥을 다 먹은 아이는 어른들이 김에 밥을 싸 먹는 것을 보고 자기도 먹고 싶다고 졸랐다. 하는 수 없이 밥을 조금 덜어 차려주었다. 그렇게 그나마 평화로운 저녁이 지나가는 듯했다.
남편은 소파로 복귀하고, 나는 남편의 지시에 따라 신용카드를 하나 발급받은 뒤 식탁을 치우고 주방을 정리했다. 그 사이 남편은 거실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아이를 씻기는데 다 씻고 아빠처럼 반팔을 입겠단다. 오늘은 추워서 안된다고 했더니 "엄마 미워! 엄마 미워! 엄마 미워! 엄마 저리 가!" 소리를 지른다.
아. 제발. 제발. 쌓아둔 설거지도 해결하고 나도 씻고 자고 싶다. 너한테 매달리는 것 나도 힘들다. 그럼 네가 알아서 씻으라고 하자 못 씻겠다며 울음이 터져 아빠를 찾는다. 어느새 침대로 자리를 옮겨 자고 있는 아빠에게 지령을 받았는지 다가와 '엄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같은 음가의 문장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딸.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남편이 그제야 방에서 나왔다. 필시 그는 나에게 분노했으리라. 화장실 앞에 앉아있는 내 눈앞에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문을 닫더니 씻기기 시작하는 남편. 그래. 둘 다 똑같이 일하고 퇴근했는데 당연하다는 듯 혼자서 다 해야 하는 건 마음이 참 힘든 일이었어. 기분 나쁘게 일을 가져가주었지만 덕분에 드디어 설거지를 해결하러 갈 수 있겠네.
이런 날이면 흐려졌던 그날의 다짐이 다시 떠오르곤 한다. 내가 '이 사람이랑'은 절대 둘째를 가지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던 그날. 아, 이래서였지. 하루종일 못 먹고 못 쉬고 있었어도 퇴근하면 당연하게 밥을 차리고 아이를 돌보고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던 육아휴직 시절이 참 괴롭고 고된 나날들이었음을 다시 떠올렸다.
아이는 자기 전 한번 더 울었다. 손톱을 깎고 있는 내 옆으로 와서 손톱을 올려 둔 종이를 확 낚아채기에 내가 "아아잇!" 하며 손톱이 날아가지 않게 붙잡자, 얼굴이 금방 일그러지며 펑펑 울었다. 아. 무조건 웃어줘야 안 우는 우리 딸. 조금만 단호해도 울어버리는 우리 딸. 하이톤으로 말하지 않으면 엄마 화났다며 징징대기 시작하는 우리 딸. 나는 딸이 너무 어렵다.
날이 밝았다. 다시 아이를 마주해야 한다. 고작 36개월짜리와 이러면 안 되는데, 아이를 '잘' '열심히' 키우려는 결심이 무너지는 날들이 있다. 그게 어제였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