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도 Dec 08. 2023

무지개 비누를 쓰는 쾌감

환경을 사랑한 자린고비 이야기

나는 타고난 자린고비다. 자린고비의 역사적인 첫행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부터 사고 싶은 것이 항상 많았던 내 동생은 그날도 엄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길을 가다가 슈퍼 앞에서 멈춰 선 엄마는 우리에게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고르라고 했다.


신나는 얼굴로 단박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고른 동생과 달리 나는 오랫동안 아이스크림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결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타입이긴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스크림을 고르지 않는 나에게 엄마가 물었다.


"딘도는 왜 아이스크림을 안 골라?"

"엄마, 저는 그냥 500원을 돈으로 주안 돼요?"


뜻밖의 대답에 놀란 엄마가 이유를 물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500원만 더 모으면 만 원이라서요!"




이것이 초등학교 1학년의 생각이라니. 참으로 기특하지 않은가. 엄마도 나를 기특하게 여겼는지 이스크림을 사주고는 내가 요구한 500원 덤으로 줬. 그날 500원을 손에 쥔 나는 마침내 오랫동안 목표했던 만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엄마의 생일에 편지와 함께 선물을 내다.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제 생일 선물은 그동안 모은 만 원이에요. 이걸로 엄마가 갖고 싶은 청바지를 샀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그때 기특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마음도 참아가며 모은 용돈 전부를 엄마의 생일 선물로 주는 딸이라니.


사실 만 원으로는 청바지를 사기에 턱없이 모자랐지만, 엄마는 정말로 구제샵에서 만 원을 주고 청바지를 사 오셨다. 그때 엄마가 예쁜 청바지를  온 것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물건을 함부로 버리거나 낭비하지 않고, 아끼고 모으는데 취미 재주가 있었던 내가 커서도 남모르게 쾌감을 갖고 는 취미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비누 뭉쳐 쓰기'다.


다른 사람들은 작아진 비누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손이 커다란 우리 남편은 비누가 조금만 작아져도 새 비누를 꺼내 쓴다. 그러면 쓰던 비누는 찬밥 신세가 된다.


내가 보기엔 쓰던 비누도 여전히 크고 멀쩡하다. 비누는 어차피 다 쓸 때까지 성능이 닳지 않는 물건이다. 멀쩡한 물건을 버 수 없는 나는 처량해진 그 비누를 안방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우리 무지개 식구들에게 꼭 포개어 붙여준다.


처음에는 비누가 잘 붙지 않는다. 비누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그럴 때는 비누를 잡고 이미 붙었다는 듯이 살살 돌려가며 거품을 낸다. 그렇게 손을 몇 번 씻다 보면 전학 온 비누도 어느새 한 몸이 된다.




그래서 내 비누에는 세월이 들어있다. 어떤 비누를 언제쯤 썼는지가 비누의 단층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을 씻으며 비누를 보다가, 문득 뿌듯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 글을 남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침을 하다가 새우를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