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초안산캠핑장
숨 가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세 여자가 서울의 한 캠핑장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보냈다.
걸 그룹 핑클이 최근 <캠핑클럽>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6박 7일간 캠핑 여행을 떠났다. 낯선 캠핑장에서 그들은 하나둘 속마음을 털어놨다. “너희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 “언니의 존재가 힘들 때도 있었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어.” 오랜 친구와 나누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핑클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선사한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서둘러 새로운 ‘캠핑클럽’ 멤버를 모집했다.
캠핑클럽, 첫 합을 맞추다
가을 하늘이 청명한 평일 오후, 루프톱 텐트를 실은 차 한 대가 서울 초안산캠핑장으로 들어섰다. 쉬는 날이면 캠핑장에 출근 도장을 찍는 장진영 씨의 차다. 신문사 기자인 그는 열심히 일한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도심 속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진영 씨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고캠핑’ 사이트(www.gocamping.or.kr)에서 오토캠핑이 가능한 서울 시내 캠핑장을 찾았다. 이곳에선 관광 사업자로 등록한 2400여 곳의 캠핑장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안전 기준을 준수하는 캠핑장을 이용해야 한다는 게 진영 씨의 생각이
다. 불법 야영장은 안전사고에 취약할뿐더러 추후 대처도 어렵다.
캠핑이 일상인 그는 늘 차에 루프톱 텐트를 비롯한 캠핑 장비를 갖춰 둔다. 언제 어디로든 떠나기 위해서다. 예약한 캠핑 사이트에 주차한 진영 씨는 순식간에 루프톱 텐트를 완성했다.
뒤이어 캠핑클럽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다. 진영 씨와 자주 캠핑을 다니는 대학 동기 송혜원 씨와 캠핑 초보 김아영 씨다. “와,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아영 씨는 한껏 신이 났다. 초안산캠핑장은 서울 시내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한 데다 2017년에 개장해 말끔한 시설을 자랑한다. 수많은 캠핑장을 이용해 본 진영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정도면 5성급”이다.
텐트에 짐을 내려놓은 세 사람은 우선 캠핑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평일 오후여서 캠핑장은 한산한 편이었다. 간만에 누리는 조용한 시간에 세 사람의 마음에 평온이 깃들었다. 여유로운 시간도 잠시, 드넓은 잔디밭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치열한 경기 끝에 아쉽게도 결과는 무승부. 승부 내기는 다음 캠핑으로 미뤘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인 결과, 허기를 느낀 세 사람은 얼른 텐트로 돌아와 미리 봐 둔 장바구니를 꺼내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채소 손질 같은 간단한 일은 막내 아영 씨 몫이다. 배추, 청경채, 쇠고기 등 밀푀유나베 재료를 차곡차곡 준비하던 아영 씨는 “간만에 밖에 나와 몸을 쓰니 잡념이 사라져 좋다”라며 해맑게 웃었다. 보조 셰프 아영 씨의 도움을 받아 캠핑클럽의 메인 셰프 진영 씨가 밀푀유나베와 치즈 등갈비구이를 뚝딱 만들었다. 캠핑 고수인 줄은 알았는데 요리 고수인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진영 씨는 이미 한 차례 캠핑 요리책을 낸 저자였다. 캠핑 경험을 백분 살린 요리 레시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2015년 세상에 나왔다. 당시에도 같이 캠핑하러 다닌 혜원 씨는 진영 씨가 책에 소개할 음식을 요리하고 사진을 찍는 동안 잠자코 기다렸다. 그리고 말했다. “진영아, 이제 먹어도 돼?”
“캠핑이란 자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또 먹는 것”이라는 진영 씨의 말은 허투루 들을 게 아니었다. 밀푀유나베 냄비엔 우동 면을 추가해 끓이고, 치즈 등갈비구이 팬엔 밥을 넣어 볶는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가 탄생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던 캠핑클럽 멤버들은 남은 재료로 만든 야키우동, 피자 토스트 같은 메뉴에 연신 “맛있다”라고 감탄하며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캠핑 고수도, 초보도 행복한 시간
지금이야 남부럽지 않을 만큼 캠핑 장비를 갖춘 진영 씨와 혜원 씨도 과거엔 백패커였다. 배낭 하나 메고 길을 걷다가 배고프면 멈춰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장비는 중요하지 않아요.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캠핑은 재밌어요.”
진영 씨와 혜원 씨는 15년 넘게 우정을 쌓아 왔다. 한동안 두 사람의 대학 시절 일화가 이어졌다. “수업 끝나면 오락실 가서 펌프 게임 하고 신나게 놀았지.” 그러다 진영 씨가 20대 후반에 겪은 서른 앓이에 대해 털어놓자, 혜원 씨의 표정이 사뭇 달라진다. “그땐 그랬어.”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이임에도 여전히 할 말은 많고, 나누지 못한 마음이 있다. 처음 만난 사이여도 아무렇지 않게 속내를 드러낸다. 그게 캠핑의 매력이다. 때로는 전부가 되기도 한다.
어느덧 7년 이상 캠핑을 즐긴 진영 씨에게 캠핑은 어떤 의미일까. “신문사에서 일하니까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듣거든요. 캠핑하는 순간만은 스위치를 내리고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는 거죠. 캠핑할 땐 시계도, 휴대전화도 최대한 안 보려고 노력해요. 말 그대로 쉬어 가는 시간이니까요.”
사람들로 북적이는 캠핑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진영 씨는 때때로 홀로 캠핑을 떠난다. “그땐 무조건 쇠고기를 구워 먹고 샴페인을 마셔요. 그러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거든요. 이런 게 행복이죠.” 진영 씨의 말이 끝나자 아영 씨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혜원 언니는 어떨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어요? 나는 잘 모르겠어. 떠오르는 게 없어!” 좌절하던 아영 씨가 손에 잡히는 소설 한 권을 집어 든다. 그러고는 가만히 책을 읽다가 말했다. “소설 주인공 직업이 나랑 같아. 신기하다!” 특유의 발랄함으로 캠핑클럽의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아영 씨의 주 업무는 설거지다. 설거지하는 그에게 캠핑 소감을 묻자, “완전 내 스타일”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실제로 그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공기가 정말 맑네. 캠핑하는 꿈 꿨어. 아웃도어 체질인가 봐!”라고 말해 모두의 귀여움을 샀다.
1박 2일간 진영 씨는 입버릇처럼 “뭘 걱정해.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덕에 뭔가 잘못될까 불안에 떨던 캠핑 초보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음식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장비가 없으면 없는 대로. 캠핑에서 웬만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람에 흩날려 몇 초 만에 사그라지는 비눗방울처럼 캠핑장에 이고 온 걱정거리는 선선한 가을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하룻밤의 리프레시 휴가를 마친 진영 씨는 이튿날 일터로 출근했다. 캠핑장을 빠져나가는 진영 씨의 차가 한결 가벼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