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블록체인,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꾸다.

2020년 5월 셋째 주, Sustainability 뉴스레터

by 녹차라떼샷추가


스위스 식품업체인 네슬레(Nestle)는 지난 4월 7일, 조에가스(Zoégas) 커피 브랜드의 생산 및 유통 이력을 추적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네슬레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공급망을 관리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기여*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블록체인을 기업의 지속가능성 강화를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기업들이 앞다투어 도입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 참고 : 기업이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는 의미는 사업 활동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사회적/환경적 영향은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사회적/환경적 영향은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환경적 영향 범위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UN의 Sustainability Development Goals(SDGs)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Nestle와 IBM의 블록체인을 통한 공급망 관리 파트너십 체결




먼저 블록체인이 무엇인가요?


블록체인은 데이터 조작 방지 기술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원래는 비트코인 같은 전자 화폐 시스템에서 거래 정보에 대한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로 개발이 되었습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모든 구성원들에게 완전히 공개함으로써 위조를 방지하는 개념입니다. 권위를 가진 누군가가 정보의 진위여부를 판단해 주던 기존의 방식과는 정반대입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100만원을 송금한다고 했을 때, 이 정보에 대한 진위여부는 은행이라는 권위를 가진 기관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반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A가 B에게 100만원을 송금한다는 정보가 금융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전달됩니다. 물론 해당 정보는 암호화되어서 실제 어떤 내용인지는 구성원들은 알 수 없습니다. 각 구성원들 중 과반수 이상이 동일한 정보를 공유 받았다고 확인을 해주면, 해당 거래가 진짜라고 인정되어 '블록'으로 기록이 됩니다. 한 번 블록으로 만들어진 정보는 되돌릴 수 없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블록체인을 분산형 데이터 조작 방지 기술이라고 부르는 건 바로 이러한 작동원리 때문입니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보의 통제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권위에 의존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지만, 최근에는 정보의 양이 방대해지고, 정보를 다루는 참여자들도 많아지면서 정보의 통제 및 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정보의 통제보다는 완전한 공유를 통한 정보 조작을 방지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공급망에 적용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공정무역* 커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커피 한 잔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칩니다. 농장에서 커피 작물을 재배하고, 커피 원두를 재배합니다. 수확한 원두는 분류/세척 등 처리 과정을 거쳐 전세계로 배송합니다. 녹색의 커피 원두는 로스팅 과정을 거쳐 비로소 우리가 자주 보는 진갈색 커피 원두가 됩니다. 이 원두를 통해 커피숍에서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내가 마시는 커피가 언제, 어떻게 생산이 되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유통이 되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신선한 커피인지, 안전한 커피인지, 윤리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커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참고: 공정무역(Fair Trade)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생산자들이 당하는 억울한 착취를 줄이고, 제품에 대한 공정한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개발도상국의 자립과 지원을 돕는 소비자 운동입니다.


소비자가 공정무역 커피를 인식하는 경로는 대부분 판매자의 광고 문구입니다. 그렇지만, 판매자가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혹은 제품 판매 가격을 올려 받기 위해서 일반 커피를 공정무역 커피라고 거짓말을 하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일부 판매자들은 제3자 인증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마크를 부착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증마크가 소비자들에게 전적으로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제3자 인증기관은 판매자가 실제로 제출한 정보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판매자가 제출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인증기관 역시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인증마크 획득을 위해 돈을 지불하려는 판매자를 내칠 유인은 크지 않습니다. 조금 삐딱하게 보면, 공정무역을 내세워 마케팅 효과를 높이려는 판매자와 인증마크로 돈을 벌기 위한 인증기관이 합작하여 소비자를 속이는 게 충분히 가능한 구조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들은 자신이 커피 소비를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할테지만, 실제로는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보다는 판매자와 인증기관의 배를 불리는 데에 기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정무역 커피와 관련된 수많은 인증 마크


앞서 블록체인 기술을 데이터 조작 방지 기술이라고 소개를 드렸습니다. 블록체인이 공급망에 적용되면 공급망에 있는 그 어떤 주체도 한 번 기록된 정보를 위조할 수 없게 됩니다. 제3자가 인증을 하지 않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플랫폼을 통해서 생성된 정보는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블록체인을 공급망 관리에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기업들은 앞으로 자신의 공급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공개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과도 같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확산되면 기업의 지속가능성 활동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나게 될까요?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3.0시대로의 진화


지속가능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과 요구가 확대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활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이해관계자들과 지속가능성 활동을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도 진화해 왔습니다.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서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한 단계 더 진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1.0 시대'의 주된 방식은 자기 홍보였습니다. 기업이 스스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이해관계자들에게 이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적었을 때는,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 경쟁사와 차별화가 가능했습니다. 1.0 시대에는 누가 새로운 지속가능성 이슈를 먼저 들고 나오느냐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 됩니다. (*시기는 대략적으로 1990년~2010년 정도로 생각되는데, 구체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이 시기 구분은 좀 더 엄밀하게 해보도록 할게요.)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2.0시대'의 주된 방식은 자기 홍보에 더해 제3자 기관의 인증을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지금처럼 너도나도 지속가능성을 언급하는 상황에서는, 누가 진짜 지속가능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지게 됩니다. 여전히 기업 스스로가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이해관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보에 대한 객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제3자 기관을 참여시킵니다. 2.0 시대에는 다른 기업들은 쉽사리 받지 못하는 표준, 인증, 심사 등과 관련된 활동에 선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 됩니다. (*시기는 2010년 이후부터, 2025년 정도까지)


앞으로 다가올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3.0시대'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강조될 것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서 해당 기업과 관련된 데이터는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이해관계자들에게도 공유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해관계자들은 직접 해당 기업의 데이터를 확인/분석하여 지속가능성 활동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3.0시대에서는 기업들의 자기 홍보는 사라지고, 기업들이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현재 지속가능성 대응 수준이 어떤지를 통보받게 될 것입니다. 기업들은 스스로 지속가능한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려고 하기 보다는, 데이터로 보여지는 지속가능성 수준을 개선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본격적인 시기는 2025년 이후로 예상되나, 마찬가지로 근거는 없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커피 생산 및 유통 이력 추적 예시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3.0시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1. 지속가능성 대응 주관 부서를 홍보/대외협력에서 각 세부 기능조직으로 분산 이관이 필요합니다.

지속가능성 커뮤니케이션 3.0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나타날 변화는 그린워싱(Greenwashing, 위장환경주의)의 종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이 제공하는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를 어떤 말로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지속가능성 대응 전략의 핵심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해관계자들이 직접 해당 기업의 지속가능성 관련 데이터 전반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실제로 일상적인 사업 활동에서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려는 활동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을 홍보/대외와 같은 특정 기능에서 담당할 것이 아니라, 각 세부 기능 전체로 지속가능성 가치를 체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업이 지속가능성 가치를 높이는 활동은 '입'이 아니라, '손'과 '발'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자체적인 지속가능성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이 일상적인 사업 활동에서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각 사업 활동으로 인해서 어떤 사회적/환경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개선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국내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전략적 지향점과 홍보성 문구로만 다뤄왔기 때문에, 일상적인 사업 활동 관점에서 사회적/환경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각 사업 활동에서도 체계를 갖춰 지속가능성을 관리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3. 지속가능성 강화에 기여하는 협력업체를 선점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네슬레 같은 브랜드 기업이 공급망 전체에 걸쳐 지속가능성을 관리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브랜드 기업에게 공급망 전체에 걸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급망 관리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이 확산되고, 이 정보들이 이해관계자들에게 공유되면서, 브랜드 기업들에 대한 공급망 관리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브랜드 기업에 대한 공급망 관리 압력이 거세질수록 이미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업 활동을 하고 있는 협력업체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될 것입니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다른 경쟁기업 대비 사회적/환경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적을수록 브랜드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마무리

블록체인 기술 적용이 확산되면서 지속가능성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가치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지속가능성 대응 전략은 사업 활동 전반에 걸쳐 사회적/환경적 영향력을 분석하고, 이를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방향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앞으로는 지속가능성과 관련해서 말만 많이 했던 기업은 그 실상이 드러나면서 이해관계자들에게 더 많은 실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고, 말은 아끼고 오랜 기간 지속가능성을 고민해 온 기업은 그 진면목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50년 후, 서울의 여름은 더 뜨겁고 길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