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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기준을 세워라.

by 녹차라떼샷추가

손바닥 뒤집듯 바뀐 회사의 결정


예전에 일했던 스타트업은 제품 개발 방향이 자주 바뀌곤 했어요. 투자 유치 기회가 생기면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죠. 그러다 수익 압박이 커지면 다시 기존 제품 개선으로 돌아섰어요. 이렇게 1년에도 여러 차례 방향이 바뀌다 보니, 결국 기존 제품도 신제품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어요. 직원들은 "회사의 결정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몰입하지 못했어요. 결정이 번복될 때마다 불만과 반발은 거세졌고요.


결정이 자주 뒤집힌 이유는 대표의 변심 때문이었어요. 자금 조달에 대한 불안이 커지거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면 대표는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었죠. 겉으로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려 설명했지만, 곁에서 보기에는 달랐어요. 명확한 기준 없이 감정에 끌려 다니는 모습이었죠. 상황과 조건은 그대로인데 대표의 마음만 바뀌었으니, 직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했어요.




'선택'이 아닌 '의사결정'이 필요한 이유


이 경험을 통해 ‘선택’과 ‘의사결정’은 다른 개념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선택은 쉽더라고요.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거나, 무작위로 정하는 것도 선택이에요. 선택에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의사결정은 달라요. 의사결정에는 이유가 필요해요. 의사결정은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기준과 절차를 세우는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왜 그렇게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에도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 하죠. 앞의 사례에서 대표는 선택은 했지만, 의사결정은 하지 못했던 거예요.


기준이 있으면 선택은 쉬워지고, 무엇보다 일관성을 가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회사가 향후 3년간 운영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가정해 볼게요. 기존 제품에 집중하면 250억 원, 신제품에 집중하면 300억 원을 확보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가 더 분명해져요. 이런 기준이 있다면 주요한 가정이 바뀌지 않는 한 결정도 흔들리지 않아요. 대표의 불안이나 자신감 같은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겠죠.


물론 현실의 의사결정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고, 서로 얽혀 있죠. 모든 대안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도 어렵고요. 미래를 추정하는 일에는 불확실성이 크고, 가치관이 다르면 합의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의사결정자의 역할이 중요해요.




의사결정자로서 리더의 역할


의사결정자는 단순히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해요. A와 B 중 무엇이 더 나은지를 가르는 것도 결국 기준의 문제예요. 그 기준을 세우는 일은 리더만이 할 수 있어요. 기준이 세워지면 복잡한 결정도 단순해져요. 그리고 누가 선택했든지에 상관없이 조직은 그 기준에 맞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요.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선택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는가’ 예요.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의사결정자로서 리더의 역할은 중요해져요. 작은 조직에서는 리더가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리더가 모두 결정하기는 불가능해요. 혹여나 리더인 자신이 결정해 줘야 하는 건들이 쌓여 있는 상황을, 유능한 리더가 된 걸로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에 불과해요. 오히려 기준을 제시하는 의사결정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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