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는 이수연 대표는 최근 수익 악화로 걱정이 깊었어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10% 이상 성장했지만, 올해는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에요. 그 사이 새로운 경쟁 브랜드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죠. 대표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제품이 경쟁 제품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답답한 마음에 대표는 직접 화장품 매장으로 시장 조사를 나섰어요. 매대에 진열된 제품을 살펴보던 그녀는 자사 제품의 포장 패키지 디자인이 경쟁 브랜드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곁에 있던 마케팅 팀장에게 물었어요. "우리 패키지가 눈에 잘 안 띄는 것 같지 않아요?" 팀장은 잠시 살펴보더니 조심스럽게 답했어요. "아... 자세히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회사로 돌아온 대표는 직원들을 모아 패키지 디자인 개선을 지시했어요. '매대에서 제품이 눈에 띄지 않으니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이에 마케팅팀은 기존 업무를 미뤄두고 패키지 디자인 개선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죠. 기존 업무에는 수익 악화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한 시장분석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렇게 두 달 만에 새로운 패키지 제품이 출시됐지만, 수익은 회복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진행 예정이던 마케팅 활동이 미뤄지면서 수익 악화 속도는 더 빨라졌어요. 대표는 그제야 직원들에게 다른 대안을 가져오라고 지시했지만, 모인 의견 대부분은 여전히 '패키지 디자인 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어요. 대표와 직원 모두 패키지 디자인 개선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던 셈이죠.
현명한 결정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문제의 틀을 만드는 일이에요. 이를 프레이밍(Framing)이라고 불러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존 하몬드(John S. Hammond) 교수는 이 단계가 의사결정에서 가장 위험한 단계라고 설명해요. [1] 문제의 틀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서 이후 선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애초에 문제의 틀이 잘못 설정되면, 오랫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조차 효과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앞선 사례에서 이수연 대표는 수익 악화의 원인을 패키지 디자인 문제로 정의했어요. 시장 조사에서 가장 처음 눈에 띄었던 내용이었고, 한 번 틀이 만들어지자 직원들 역시 같은 틀 안에서 사고하게 되었어요. 제품 성분 개선부터 영업 채널 조정까지 다른 원인을 폭넓게 살펴볼 기회가 있었지만, 프레이밍 함정에 빠져 이를 놓치고 만 것이죠.
그렇다면 프레이밍 편향은 극복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할게요.
1.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살펴보기
처음 만들어진 틀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내가 만든 틀이든, 누가 제안한 틀이든 상관없어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틀에 왜곡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해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도 도움이 돼요. 다만 사람마다 각자의 틀 안에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해요. 따라서 의견 자체뿐 아니라 그 의견이 어떤 틀에서 나왔는지까지 이해하는 게 바람직해요. 예를 들어, 이수연 대표가 자신의 판단을 먼저 제시하기보다 여러 부서 직원들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면 훨씬 효과적이었을 거예요.
2. 가급적 무심하게 문제를 바라보기
문제를 볼 때는 감정이나 직관에 치우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해요. 특정 해결책에 마음이 쏠리면 다른 가능성을 놓치기 쉬워요. 한 발 물러서서 문제를 마치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도움이 됩니다. 이수연 대표는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컸고, 제품 자체는 부족함이 없다고 확신했어요. 하지만 이런 마음 때문에 객관적 판단이 흐려졌을 거예요. 소비자나 시장의 입장에서 조금 더 무심하게 제품을 봤다면, 패키지 디자인뿐 아니라 다른 원인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었을 거예요.
3. 데이터와 사실로 문제를 검증하기
가설과 직관에만 의존하면 편향에 빠지기 쉬워요. 시장 조사, 소비자 피드백, 경쟁사 분석 같은 데이터를 통해 문제의 틀이 현실과 맞는지 검증해야 해요. 이렇게 하면 불필요한 편향에서 벗어나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이수연 대표가 패키지 디자인 개선을 지시하기 전에 그동안 확보한 소비자 피드백 자료를 먼저 확인했다면, 실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을 거예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애자일(Agile)' 기법이 유행하면서 빠른 실행을 강조하곤 해요. 하지만 속도에만 집중하면, 정말 필요한 행동인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움직이게 될 위험이 있어요.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고,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이수연 대표의 사례처럼, 빠른 실행이 항상 성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에요.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를 파레토 법칙(20/80)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어요. 문제 정의에 사용하는 초반 20%의 시간이 현명한 선택의 80%를 결정한다는 의미예요. 빠른 실행만 강조하며 문제 정의를 소홀히 하면, 조직의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소모할 수 있어요.
결국 성과의 핵심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척이 아니라, 정확히 필요한 행동에 달려 있겠지요.
[1] Hammond, J. S., Keeney, R. L., & Raiffa, H. (1998). The hidden traps in decision making. Harvard Business Review, 76(9), 4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