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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팅힐 Dec 29. 2024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지나고 보니 후회가 된다.. 안 괜찮다고 말할걸..

후항암 12번째 중 6번째 항암을 끝냈다.

방사선치료도  큰 부작용 없이 지나갔고 걱정했던

심장초음파 결과도 지난번보다 좋아졌다고 했다.


마지막 독성항암을 끝낸 지 몇 달 지나서일까?

체력은 계속해서 돌아오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은 잔디처럼 조금씩 나더니 꽤나 센 언니처럼 보일만큼 자라 있었다. 친정엄마는 이제 모자 벗고 다녀도 되겠다고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아프기 전에도 모자를 거의 쓰지 않았던 터라 계속 써야 하는 지금이 너무 갑갑해서 벗어볼까 살짝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관리사무실 직원분이 집에 오셨다가 날보고는 집에 어른 안 계시냐고 물어보셔서 나름 충격 아닌 충격을 받고 당분간 모자를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를 까까머리 남자중학생정도로 보신듯한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 무렵 나의 37번째 생일날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이 바빠진 탓에 신랑이 겨우
시간을 내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낮에는 친정엄마가 약속이 생겨서 외출하고 큰아들은 유치원으로 작은 아들은 친정 아빠가 유모차에 태워서 낮잠을 재우러 나갔다.

어쩌다 혼자 먹게 된 생일날 점심..
그게 뭐라고 계속 기분이 우울했다.
저녁에 어차피 다 모여서 저녁 먹을 건데 기분이 왜 이런 건지.. 자꾸 심술이 났다.

나 환잔데.. 나 아픈 사람인데 게다가 오늘 생일인데

이렇게 혼자 밥 먹게 그냥 둔다고??


별일도 아닌데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한참 울고 나니 생일날 밥을 혼자 먹어서 눈물이 난 게 아니라 그냥 울고 싶었는데 이유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나는 참 눈물이 많았다.

화가 날 때도 눈물이 먼저 나고 기쁠 때도

웃길 때도 슬플 때도 당연하게 눈물이 먼저 났다.

그런데 내가 아프고 나서는 눈물이 많이 줄었다.

드라마만 봐도 다큐만봐도 훌쩍거리던 나였는데 큰일을 겪고 나니 감정에 조금 무뎌진 것 같다.

그러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혼자 엉엉 한참을 울다 그치곤 다.


그건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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