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안 나지만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나는 발레를 참 좋아했다.
요술공주 샐리에 바워크를 하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첫 발레의 모습이다.
어릴 적 정말 시골마을에 살았는데, 하루는 우리 동네에 발레학원이 생긴다는 광고 전단지가 왔었다. 유치원 친구를 붙잡고 우리 발레 다니자!라고 시작하여, 엄마들을 설득시켰던 기억이 난다.
학원 이름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학원에서는 우리 마을 여자아이들 모집에 성공을 했고, 아빠 회사에서 작은 공연도 올렸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학교 학예발표회 그리고 교육청 대회도 한 번 참여해서 소소한 수상을 했던 경험이 있다.
나는 사실 그 교육청 대회가 내 발레 인생에 특히 사진으로 남은 흑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유는, 마지막에 시선 처리가 영 0점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딱 끝난 그 순간, 정면을 봤어야 하는데 나는 무대의 오른쪽인지 왼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잘못된 시선처리가 사진에 박제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렇게 나의 발레 사랑은 끝나는 듯했다.
내 인생에서 몇 번의 무모한 도전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대학교 때 부전공으로 무용학과를 도전했던 일이었다.
발레가 얼마나 좋았냐 하면, 사실 그렇게 연습도 하지 않고서 나는 발레를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립발레단 연습실이 있었고, 대학교 첫 여름방학부터 국립발레단 취미반에 등록하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도 초급반은 엄청난 인기가 있어서 수강신청을 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배운 그 조그마한 경력으로 중급반에 바로 들어갔다. 참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 20살의 나를 귀여워해주시고, 예뻐해 주셨던 멋진 선배들이 계셨다.
그곳에서 나는 동급생 친구도 만났고, 그리고 여전히 안부를 묻는 발레언니를 알게 되었다.
나의 무모한 도전은 취미발레에서 멈추지 않고, 발레를 부전공으로 배워보면 어떨까? 정식으로 학위를 얻으면 어떨까? 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학등록금은 내는 것이고, 나는 그냥 순수하게 발레를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체능의 세계는 감히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고, 경제적으로도 부모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당연히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발레과 교수님께 찾아가서 상담도하고, 클래스도 참관했던 경험으로 나의 꿈을 마무리했다.
오늘도 발레는 취미로 계속되고 있다.
우리 집에서 발레는 취미가 가장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돈을 다시 벌기 시작한 이래 세 번째의 발레학원에 등록하여 다니고 있다.
지금 다니는 발레학원은 성인전용 발레학원으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열심히 다니는 중이다.
6개월 권을 등록한 지 3개월째, 내 몸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 게 있다면 드디어 Lv1.0 수업에서 칭찬을 받는 학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장님께서는 엄청난 열정과 칭찬으로 성인반을 지도한다. 나도 교사지만, 안 되는 학생들과 잘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열의를 가지고 지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원장님 존경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참여하니까, 원장님께서는 나와는 상황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오늘 탄듀, 줴떼, 그리고 데벨로뻬 동작에서 여러 번 칭찬을 듣고 나서 신이 난 상황이다.
아참! 이번 학원 등록 3개월째만에 나는 드디어 사이드 스트레칭을 성! 공! 하였다.
드디어 내 이마가 바닥에 닿는다....
이 순간도 나는 하나님을 찾는다. 잘 안될 때만 하나님을 찾는다. ㅎㅎ
앞으로도 오운완은 계속된다!
발레와의 짝사랑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