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대노 Feb 17. 2022

허락하지 말걸 그랬어

며느리의 방귀

난 낯가림이 무척 심한 내향형 인간이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고 적당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지만, 그 외에는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은 이런 내가 회사에 다닌다는 것 자체를 신기해하곤 했다.

남의 집에서 자본 적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 자취를 한 탓에 심지어 친정에서 자는 것도 불편해한다.

아빠는 친정을 남의 집 취급하는 나를 무척 서운해하시지만. 누군가 내 집에 온다는 것도 웬만한 내적 친밀도가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 가족조차도 큰마음을 먹어야 초대할 수 있다.

불편한 사람들과는 밥도 잘 못 먹고, 그러다 보니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극도의 소식가인 줄로 안다. 사실은 소처럼 많이 먹는데.     


성향이 이러다 보니 내게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다.

어릴 때부터 웬만하면 외출 시에는 화장실을 가지 않고, 외출할 일이 생기면 외출 자체에 긴장하여 집 밖을 나가기 전에 화장실을 몇 번이고 들락날락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남들은 알지 못하게 배가 땡땡해지고, 눌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가스가 복부에 가득 차오르면서 눌린 장기에서 통증이 발생할 정도이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을 맞이하여 시가에 갔을 때 일이다.

결혼식 때 한번 본 남편의 사람들과 몇 시간씩 앉아 전을 부쳐야 한다니…….

보통은 명절 음식을 거하게 장만하지 않으시는데, 그날은 장손 며느리가 처음 참여하는 제사라고 올 수 있는 이 씨(남편의 성) 집안 식구들은 다 참석을 했고, 남의 편만 있는 그곳에서 나는 제일 구석진 곳을 찾아 몇 시간 동안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전을 부치고 또 부쳤다.     

그렇게 몇 시간을 전을 부쳤고  남편은 그런 내가 어지간히 불편해 보였는지, 산책을 가자고 불러냈다. 약국에서 약을 사주기 위해.

보통은 진경제와 가스 제거제를 먹으면 증상이 조금은 가라앉는데 그날은 배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배에 찬 가스가 방귀라는 보이지 않는 이름표를 달고 항문을 통해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배출되어야 하는데, 남의 편만 가득한 그 집 어디에 숨어서 그 가득한 가스를 뿜어낼 수 있단 말인가.

약도 소용없는 걸 확인한 남편은 저녁식사 시간부터 나를 작은 방에 넣어주었고 난 그곳에서 아픈 배를 움켜쥐고 나와 결혼한 남편을 원망하면서 누워있었다.     

돌아갈 분들은 돌아가시고, 이제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나 방귀 뀌어도 돼?”

남편은 나를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곤 당연히 가스 배출을 허락하였고, 남편의 대답과 동시에 나는 고양이 자세를 취했다.     


부우웅웅 부우웅 부우웅웅  부우웅 부루루루룽 부루룽     


내 뱃속 가득한 가스들은 서로 먼저 나가려고 전쟁 통의 폭격 소리를 내며 배출되기 시작하였고  그 뒤로 한 시간 이상 멈추지 못했다.     



그날 처음 방귀를 튼 나는 그 이후로는 수시로, 심지어 신랑 얼굴에 대고도 자유롭게 가스를 배출하였다. 왜? 난 허락받은 여자니까!

지금 신랑은 결혼 후 가장 후회되는 일로 방귀를 허락한 일을 꼽는다.    

 

그때 그 시어머니의 공주(=시어머니가 부르는 나)는 이제 가면 쓰지 않은 얼굴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고 있으니 시어머니도 어쩌면 남편처럼 나에게 한 첫 허락을 후회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그 첫 허락이 나는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엄마가 다 해줄 테니까, 청소든 설거지든 하기 싫은 거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버려 둬'가 아닐까.    


설이다.

우리 집에 오신 시어머니는 공주 손에 물 닿을까 밀린 설거지며 빨래며 청소를 하시느라 자리에 한번 앉지 않으신다.

그리고 공주는 우아하게 방에 들어가 우아하지 않은 방귀를 내뿜는다.

"아! 그때 허락하지 말걸 그랬어!"

신랑의 외침이 들려온다.


EBS의 방귀대장 뿡뿡이


이전 03화 설거지하는 남편의 뒷모습은 오래 보지 않아도 예쁘다.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