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 할까? 100일 할까?
2025년 2월 중순, 세상이 바뀐다. 손주가 태어나고 딸은 엄마가 되고 난 할머니가 된다. 첫딸을 낳았을 때 난 많이 힘들었다. 10시간 산통을 하면서 온 뼈가 다 열렸다는 말이 맞다 싶게 내 몸은 약해져있었다. 몸은 약해졌는데 나보다 딸을 먼저 돌봐야 했다. 잠도 잘 못자니 작은 일도 힘들게만 여겨졌었다. 건강만 하면 별거 아닐 것 같은 일들이 얼마나 크게 보였는지. 아이가 태어난 이 경사는 어쩔 수 없이 힘든 시간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손주의 탄생은 큰 기쁨이지만, 그와 함께 맞이할 변화와 어려움을 미리 인정하고 받아 들이며 시작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특히 더 복잡한 상황에서 이 변화를 맞이 하게 된다. 딸은 뉴욕에 살고 있고 난 한국에 있다. 난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 1달동안 딸 곁에 있으려 맘을 먹고 있지만, 100일까지는 돌봐 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 1달이냐 100일이냐를 두고 날짜를 두고 마음이 자주 바뀐다.
무엇보다도 100일 동안 딸을 돕는 과정에서 관계에 대한 걱정이 크다. 딸과 손주를 돌보면서 행복한 경험을 하기보다 서럽고 힘든 경험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힘들게 손주 돌보고 집안 일까지 하면서 몸이 힘든 건 당연한데, 마음이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걱정이 많아진다.
아이 셋을 키운 후배의 경험담도 내 걱정에 부채질을 한다. 미국에서 두 아이 키우고 한국에 와서 세째 늦둥이를 낳았는데, 워킹맘이라 힘들어 하다 마침내 미국에 계신 시어머님이 한국으로 오셔서 아이를 돌봐 주시기로 했다. 시어머님은 집안 일에 능숙하셔서 집은 늘 깨끗했고 막내도 잘 돌봐주셨다. 후배는 집안 일을 안 하셔도 된다고 말했지만, 어머님 눈에는 더럽고 지져분해 보였는지 계속 청소를 하셨다. 하다 보니 며느리 방 욕실까지 청소하고 옷장도 정리하면서 경계를 넘어셨고, 결국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집안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시어머님의 체력에 한계가 있다보니 불평이 점점 늘어났고,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후배는 시어머님 눈치를 보며 참을 수 밖에 없었지만, 결국 자신의 집이 아닌 남의 집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자 남편이 결단을 내려 어머님을 다시 미국으로 보내드렸다고 한다. 그 3년은 가족 모두에게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시어머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
후배는 결국 소통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서로의 역할과 경계를 명확히 정해야 했지만, 시어머님은 젊은 시절 이민을 가신 후 옛 사고 방식에 머물러 있어서 소통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게 꼭 지켜야 할 3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첫 째는 아기가 태어나도 딸과 사위가 아이를 데리고 자게 하라는 것이다. 할머니도 밤에는 잠을 잘 자야 낮에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잠이 부족하면 불평이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주일에 한 번은 할머니만을 위한 휴식의 날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식과 손주도 중요하지만, 우선 자신을 돌보고 충전이 되어야 즐겁게 도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했다.
셋째는 딸의 이상한 말과 행동에 대해 서운해하지 말고, '지금은 정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흘려 들으라는 것이다. 산후 호르몬의 영향으로 우울증이 올 수 있는데, 이때의 말과 행동은 절제가 안 되고 심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담아 두지 말라고 한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라 메모를 해 두었다. 미리 알고 준비를 하면, 손주를 돌보는 귀중한 시간을 더 즐기면서 좋은 기억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의 경험을 들어 보고, 내가 적용할 것들을 다 정리해 나갈 생각이다. 변화는 아픔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러나 이 변화 속에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에 집중하며,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