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의 수채화 그 둘 - 나팔 놀이
엉뚱한 발상
나뭇잎으로 온몸을 장식하고 신나게 비교적 한적한 강변 공원 같은 데서 춤을 춰보면 어떨까? 세차게 떨어지는, 맞으면 좀 추운 10월의 빗방울을 맞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어본다면? 시장 통에서 앞선 사람의 우산이 확 뒤집어지는 걸 보고 큰 소리로 웃어본다? 나 또래 노인의 모자가 돌풍에 확 벗겨져 날아가는 걸 보고 “와우!” 하고는 연이어 휘파람을 “휘이익!” 불어 제쳐 봐야지! 이런 엉터리 같은 행동이나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상상하면서, 즉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햇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들판을 거닐어 보라고, 혹은 여름날 찾았던 강가에 가서 이리저리 낚시라도 해보라고 안톤 슈낙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서 우리에게(나에게) 권유한다. 그러면 다가오고 있는 늦가을, 초겨울의 한기(寒氣)에 맞서는 온기(溫氣)의 뱃심이 아랫배에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산 위 솔밭 강변 솔밭
내가 가기로 마음만 먹으면 그런대로 쉽게 갈 수 있는 솔밭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부산 집의 뒷산인 백양산 그 곁 쇠미산 위에 있고 다른 하나는 하동읍 섬진강변에 있다. 산 위 산속의 너른 솔밭은 내가 자주 가지 못하지만 여러 번 다녀온 곳이고, 강변의 솔밭은 내가 그 곁을 지속적으로 지나치며 보는 곳이지만 아직 한 번도 차를 세워 들르지 않은 곳이다. 강변 솔밭은 송림공원과 하동포구 공원 등 두 개의 송림으로 나뉘어 있다. 좋은 줄 알고 있고, 볼 때마다 좋았지만 1972년 제대 후 한번 들른 이후로는 한 번도 발을 디디지 않은 강변 솔밭, 이번에 드디어 그 솔밭에 발 디디게 되었다.
엉뚱한 발상 실행
10월에는 하동 섬진강변 솔밭에서 만나자고 9월에 약속했다. 우리 열 명, 저기 고흥군 강진의 고금도에 있는 수향사 주지 안팎도 오게 되면 12명인 우리 가무작살 동무들은 강변 솔밭에서 걷기도 하고 강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둘러앉아 반나절 담소 나누자고 약속하고 구월에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 열두 명은 시월에 만났다. ‘동무들’이라는 말을 쓰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하지만 유소년 시절의 친구들을 이르는 말이니 ‘친구’라는 호칭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기에 구태여 동무들이라고 불러 본다. 그런데 엉뚱한 생각이 또 들었다. 악기를 들고 갈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난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다. 엉뚱한 생각 그것이 아이디어이고 창의력을 잠재우지 않는 사고의 동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엉뚱한 생각을 그대로 실행하는 건 아니다.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의 안톤 슈낙의 말처럼 다소 엉뚱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한기를 온기로 바꿀 수 있고, 구태의연한 일상의 정경들도 새롭게 볼 수 있다. 설령 엉뚱한 발상이 나태한 사고를 흔들어 깨우는 자극제가 된다고 해도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행동으로 쉽게 옮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나에게만 적용되는 엉뚱한 생각은 행동으로 연결시키며 살아온 편이다.
가무작살 이 동무들과 지난해 만남에서, 나는 어릴 적 놀이인 자치기, 제기차기, 뙈기 치기, 땅따먹기 시합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호응이 의외로 좋아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낫 치기는 위험에서 배제했고. 그런데 첫 놀이인 제기차기에서 제동이 걸려버렸다. 지난해 이맘때 편이 집 거실에서 본 시합을 앞두고 제기차기 연습을 하다가, 제기를 놓고 풍선을 차다가 미끄러져 손목 골절을 당하는 불상사를 겪은 것이다. 편은 부상과 접합 수술 등 나의 엉뚱한 발상 때문에 편은 본의 아니게 고통을 겪었다. 그 후유증,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다. 12월에는 팔목 지지대 제거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엉뚱한 발상의 후유증 때문에 땅따먹기와 뙈기 치기 놀이는 그 뒤로 이어지지 못했다.
악기 하나 달랑 들고 가는 그걸 무슨 엉뚱한 발상의 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으랴만 내가 구태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강변 송림 그곳이 공중장소이고, 혼자서 하는 버스킹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을숙도 문화회관 색소폰 모임에서 가진 거리공연 즉 버스킹에는 몇 번 참여한 적 있다. 솔밭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걷는 사람이 많으면 악기를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제 철 여름이 지나서 인지 다행히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악기를 꺼낼 수 있었다.
차면 풍요롭지만 비어서 풍요로운 것도 있다. 하동 송림공원이라 부르는 섬진강변 솔밭도 그랬다. 사람이 없으니 바람이 있었고 발자국 소리가 없으니 솔바람 소리가 있었다. 텅 빈 송림, 앉을자리도 쬘 10월의 햇빛도 백사장 모래도 흐르는 물도 많아서 좋았다. 악기를 꺼냈다. 몇 곡 연주만 할 생각으로 앰프를 지참하지 않고 작은 스피커만 가지고 갔었는데 동무들이 나도 노래를 한 곡조 뽑겠다고 한다. 난감했지만 사이다 병을 마이크 대신 건넸다. 그리고 나는 악기로 즉석 반주. 이렇게 노래도 여러 곡 이어졌다. 구경꾼도 몇 사람 모여든다. 우리끼리의 놀이가 버스킹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송림의 강변 저기 모래밭 조형물 조개들 위로 해(太陽)가 레이저 빔도 쏘아준다. 인기 있는 연예인의 야간 공연 서치 라이트 조명처럼.
죠안 바에즈(Joan Baez)의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The River in the Pines)는 불지 않았다. 노래 말 담긴 사연이 안타까워 우리들 동무 모임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불 수 없었다. [메리라는 처녀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애인이 있었는데 그는 솔 숲 사이 강물을 오르내리는 하동(河童, river boy)이었다. 봄에 결혼하고 나무들이 일찍 움을 트고,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했을 때, “포도주가 익을 때쯤 돌아올게, 그 솔 숲 사이 강변에서 만나!” 하고 는 뗏목 타고 떠난 젊은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치명적인 급류의 암석 물가 그곳엔 지금도 강물이 소리 없이 잔물결 짓고 있고 뗏목들이 여전히 그 폭포를 내려가고 있지만, 거기 그곳 그 강변 길목 무덤엔 지나가던 사람들이 심은 야생화가 피고 있다는 노래, 그 무덤은 솔 숲 사이 강물이 흐르는 곳 젊은 두 연인의 무덤.]이라고 하는 사연이. 섬진강 솔밭 이곳에도 그런 사연의 죽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연도 있고.
해가 기운다. 털고 일어섰다. 그래도 자리를 챙기고 떠날 때까지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백사장 모형 조개를 비치는 레이저 빔은 그대로였다. 솔밭 사이로 보이는 섬진강 물은 여전히 그대로 흐르고 있었고. 강변의 솔밭 나팔 놀이는 이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