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가 부족했다. 엄마가 내민 체크카드 안에 든 현금으로는 병원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간호사는 교복을 입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이 없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안내 책자 한 개를 내밀었다. 전화를 해도 연결은 어려웠고, 막상 연결이 되면 내가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을 물어 난감하게 했다.
정부 지원을 받을 만큼의 어려운 집안 사정이었지만 아빠 엄마의 공동명의 작은 주택이 발목을 잡았고, 자잘한 부분들이 서류상에서 보류되어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적극적으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 뭔가를 해야만 하는 현실 가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구걸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고 모른 척 다른 쪽을 바라보며 외면하며 그 현실에서 나 홀로 훌훌 도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와이파이가 빵빵한 병원 의자에 긴 시간 앉아 하염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릴스를 보다 보면 우울감은 잠시 잊혀졌다.
카톡보다 인스타 DM으로 대화를 했기에 DM은 대부분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었다.
알바 시간: 한 시간 - 맥시멈 30만 원까지 지원 가능
무의식적으로 메시지 아래 링크를 눌렀다. 학생 지원 가능이라는 6글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쿵쿵거렸다. 무슨 일이길래 최대 130만 원까지 벌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엄마의 밀린 병원비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한 것이다. 그곳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건물 5층 오피스텔이었다.
506호. 문을 두드리니 문도 열지 않고 이름을 물어보는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듣자 온몸의 털이 토독토독 서버리는 느낌이 들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무서움'이었던 것 같다.
“윤슬... 이윤슬이요.”
문이 열리고 인상 좋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쭈뼛거리며 있으니 무서운 곳 아니라고 소파에 한 사람 더 와있으니까 걱정 말고 들어오라 말했다.
진회색 소파에는 나보다 10살 정도는 더 많아 보이던 20대의 한 여자가 앉아 있었고 화장이 진해 촌스럽고 가벼워 보였다. 특히 지나치게 얇게 그려진 눈썹과 연장된 속눈썹 분위기가 더 음산해 보였다. 눈이 마주쳐 가볍게 눈인사를 한 우리는 같은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 몇 살?”
“... 17이요.”
“ 아가네.”
“....... 아가는 아니죠.”
그게 우리의 첫 대화였다.
“ 잠깐 기다려봐요. 기획안을 좀 보여줄게.”
지원서와 기획안을 손에 들고 슬리퍼를 끌며 다가오는 남자는 깔끔하고 착해 보였다.
눈이 아래로 처져 있어서 그런지 순해 보였고 무테안경을 써 똑똑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순간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늘 등산화 신발에 검은색 바지, 무채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인상이 강하고 살집이 있어 멀리서 보면 산적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걸어오던 느낌과는 너무나 상반됐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저 사람은 전문적인 일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기획안은 광고 같은 12컷의 그림이 전부였다. 소파. 침대. 티팬티, 프런트브레이지어(이 것은 설명을 듣고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망사 스타킹.
온라인 쇼핑몰 론칭 준비로 인한 모델이 필요. 노출이 있는 상의와 하의 옷 착용이 부득이하게 필요할 수 있음. 정도의 문구로 나는 티팬티를 떠올릴 수 없었다.
다음 장을 넘기니 성인영화 캡쳐본을 프린트 한 사진이 있었다. 말 그대로 남자가 여자 위에서 적나라하게 삽입하는 모습이었다. 17살 나는 사진을 보자마자 귀가 빨개졌고 이런 사진을 찍는 줄은 모르고 왔다고 말했다.
“ 뭐야, 17살인데 아직도 경험이 없어?”
무테안경 너머의 눈이 반짝였다.
“....”
“ 17살이면 거의 성인인데 이런 게 왜 부끄러워. 우선 설명 듣고 결정해요. ”
존대와 반말을 섞어 강압적이고 부드럽게 그 사람은 우리 둘을 조련했다. 소파에서 일어나는 순간 내 옷이 다 찢겨 살해당할 것 같다는 막연한 공포심이 들었다.
설명만 듣고 일어나 저 문을 열고 나가자. 5층이니까 엘베보다 계단으로 빨리 뛰어 내려가자. 그냥 설명일 뿐이잖아. 빨리 듣고 어서 나가자 여기서.‘
10만 원, 15만 원, 20만 원, 30만 원 130-150까지 금액에 따른 상황이 자세하게 명시된 책자는 처음 듣고 본 것들이었다. 아직 얼굴도 못 본 미지의 남성과 함께 침대 위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고 무테안경은 그 건 사진이 될 수도, 영상이 될 수도 있다고 상황을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리얼리티가 생명이라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데 콘돔을 사용해서 실제 삽입이 이뤄지는 한 컷 정도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했고 가능하다면 이 부분은 상업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도 했다. 영상의 경우, 실제 삽입의 경우 150만 원 정도까지 쳐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시장에서 고기 가격을 깎던 엄마가 생각났다.
“ 돼지고기 세일이라며! 천 원만 깎아줘요.”
“ 징그럽게 깎아대 정말. 만원까지는 쳐줄 수 있어! 여 가져가.”
그 쳐줄 수 있다는 단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 어차피 언젠가 할 경험 돈 받고 하는 거야 학생. 150만 원에 첫 경험이면 할 만하지 않아? 세상에 이런 꿩 먹고 알 먹고 가 어딨 어?”
수진언니라는 얇은 눈썹의 그녀는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160! 이라며 가격을 흥정했고 사장이란 남자는 몇 번 경험이 있다는 걸 알겠다는 듯 고민하는 척하다 지원서 한 장을 파일 안에 넣었다.
그리고 바로 160만 원을 수진 언니 계좌로 입금했다. 1초의 결정으로 10초 만에 돈이 입금되는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살짝 허벅지 옆쪽을 꼬집었다.
언니는 담담하게 계좌를 확인했다. 아빠는 가끔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이 돈도 잘 벌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짓을 해야만 그런 큰돈을 벌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바로... 150을 받을 수 있나요... 언니는 경력직인데 저는 초보자이니까 혹시 오늘 바로 안 주나요... 같은 말들을 고민하는 사이 언니가 내 등을 툭 건드렸다.
“ 야, 졸지 마. 돈 필요해서 온 거 아냐? 뭘 고민해. 너한테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뭐야. 돈 아니야? 그럼 돈 하나만 생각하라고 애송이처럼 벌벌 떨고 있지 말라고.”
사장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 아 독촉하면 학생 놀랄라. 충분히 고민해요. 처음이라 걱정될 수 있는데.. 뭐 사실 이건 세상 살다 보면 아주 별거 아닌 작은 일이라.. 학생도 알게 될 거야. 이런 거 정말 별것도 아니란 거.”
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바로 보내주세요 돈..”이라고 말한 뒤 시간이 좀 지나 알게 됐다. 그 사람과 수진언니가 2인 1조로 움직이는 한 통속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