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던진 질문

아빠 한테 우린 몇 번째야

by 지오쌤


“네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냐.” 차갑게 두들긴 이 말은 경이 가슴에서 오래도록 빠지지 않았다.


이 말을 남긴 어머니는 한때 불같은 기세로 둘째 며느리를 호령하던 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름휴가철이면 어김없이 입원을 반복 하셨다.

기세는 희미해지고, 몸에서는 서서히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까지 병원과 집을 오가며 생을 마감하셨다.


인서와 인후는 분명 고인의 친손녀였다.

하지만 상례절차에서 외손자들보다 뒤로 밀렸고,

어떤 의례에서는 아예 이름조차 빠져 있었다.

경이는 문제라고 느끼지 않았다.

딸이라는 이유로 늘 관심 밖에 있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무심함은 더이상 새롭지도 섭섭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인서는 달랐다.

그날 밤 장례식장엔 온수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 고모가 인후에게 컵을 씻으라고 했고

인서는 이를 악문 채 동생이 그 일을 해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인서는 어릴 적부터 인후의 보호자였다.

생후 다섯 달 무렵부터 중환자실을 오가던 인후곁에서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해 왔다.

밥을 먹이고, 숙제를 챙기고, 학원 시간표를 기억하는 일.

초등학생 인서가 묵묵히 감당해왔다.

깊은 밤 장례식장 한 켠에서, 고모들의 가벼운 농담과 조롱이 오가는 동안

인서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기 자신이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능을 본 후 쌍꺼풀 수술로 부기가 덜 가신 눈까지 그 날의 조롱거리 위에 올려졌다. 수능생은 인내의 임계치를 넘어서 버렸다.

한 해의 끝자락, 장지에 몰아친 강풍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경이는 아이들 상복 위에 조끼를 입히고, 챙겨 온 파카를 두 딸에게 덮어 주었다.

그모습을 본 고모 한분이 인후에게 말했다.

“너는 뚱뚱해서 안 춥지?”


말과 동시에 고모는 인후의 파카를 자신이 걸치고,

자신이 입고 있던 파카는 본인 아들에게 건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인서는 장례식장내내 모든 걸 보고, 듣고, 느꼈다.

그날의 서러움은 몸에 각인된 듯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숨고를 틈도 없이,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빠, 이게 가족이에요?


아빠는 연차 내고 간병하셨고,

엄마는 주말마다 할머니 곁을 지켰잖아요

외손자들은 아들이고, 우리는 딸이라서 그런 건가요?.

인후랑 저는 왜 불렀어요? 외손자들이랑 상 치르면 되잖아요.

우리는 뭐 하러 온 거예요? 인후는 얼어 죽어도 돼요?

경이는 입도 눈도 조용히 감았다.

한때 ‘아기 염소’ 노래를 부르며 엄마 품에 안기던 아이들이

어느새 ‘아가씨 염소’가 되어 스스로를 지키고 있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지켜야 했던 질서와 위계는

그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상처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차 안은 오랜 침묵으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숨쉬기조차 쉽지 않았다.

인서의 울음은 멎었지만, 분노는 여전히 공기 속에 무겁게 떠 있었다.

어머니를 묻고 돌아온 집안엔 눅눅한 피로와 정적만 감돌았다.

벽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기를 긁었다.

어머니 상을 치르면서 쌓인 피로와 딸의 호소는

달래지지도, 소화되지도 않았다.


석훈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사소한 일로 왜 이 난리야.”

그 말에 인서가 단단히 올라섰다.

어깨가 들썩이며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졌다.

“이게 사소한 일이에요? 아빠 누나들한테도 물어보세요.

왜 딸을 흉보는지, 사소한 일로만.”


“뭐? 아빠 누나? 버르장머리 없이 고모한테 너 말 다 했어?”

석훈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졌다.

그는 베란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찰나의 찬바람이 거실로 밀려들며 이 집안의 오래된 차가움과 뒤섞였다.


인서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버르장머리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아빠ㅡ”

석훈의 눈매가 좁아지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짜 건방지네.”

그는 무심코 한 손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이제 때리기까지 하실 거예요? 때리세요!”

인서는 눈을 부릅뜨고 맞을 태세로 쏘아붙였다.

말끝과 동시에 눈물이 터졌다.


콸콸 흐르는 울음은 묵은 분노와 서러움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아빠한테… 우린 어떤 존재예요?

아빠한테 우린… 몇 번째예요?

우리가 가족 순위 안에 있기는 해요?”

경이는 숨이 멎는 듯했다.


인서의 울음 섞인 절규가 공기를 찢었다.

“아빠는 혼자 외국에 계셨으니까… 다 모르잖아요.”

그 소리는 경이를 가두는 쇠창살 같았다.


오래전 외면했던 장면들이 연쇄적으로 떠올랐다.

그해 봄, 강남 한복판 경이의 샵.

손님으로 붐비는 하루, 브러쉬를 쥔 손은 땀으로 젖었다.

유치원이 쉬는 토요일, 인서는 구석 의자에 앉아

마른 입술로 엄마를 바라보다가 칭얼거렸다.

“손님 좀 그만 와!”


경이는 웃으며 손님의 눈치를 살피고, 아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마음속 어딘가가 단절되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조용히 구기듯 아이를 밀어 넣었다.

잠금장치가 ‘딸깍’ 소리를 냈다.

문 너머에서 인서가 목청껏 울음과 함께 엄마를 불렀다.

“엄마~!”

경이는 듣지 않았다.

귀머거리 흉내를 냈다.


하지만 인서의 울음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콧등이 붉어지지 않기를 애써 참으며, 경이는 다시 손님을 마주했다.

삼십 분쯤 후, 문을 열었을 때

아이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된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경이는 말없이 아이를 안았다.

그날 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은 오래 지나도, 경이에게 하나의 얼룩처럼 남았다.

인서 역시 그날을 잊지 못했다.

사춘기를 앓던 어느날, 분노가 몰아쳤다

"왜 그랬어"

"뭘"

"나를 왜 화장실에 가뒀냐고?"


경이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 장례식 이후 경이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

가족이란, 누구든 따뜻하게 맞아줄 거라는 낭만적인 믿음.

그 믿음이 언제부터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는지 경이는 알지 못했다.

이제 인서도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도,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여전히 장남 중심의 가족 질서 안에 있었다.


수천만 원의 조의금이 들어왔고,

그 돈과 어머니의 귀중품, 통장은

아무런 설명도, 나눔도 없이 자연스레 누군가의 손으로 흘러들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부모 상중에 빈소를 차려놓은 상태에서

기생과 관계를 가진 벼슬아치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집안은 양반 중의 양반이었다.

조의금의 일부가 경이 집에 들어왔다.


“인서는 대학 갈 때 큰아빠가 축하금 줬잖아.”


경이는 그 말의 어조, 정확한 금액,

말끝에 실린 주희의 웃음을 잊지 못했다.


아마 아울렛 중저가 브랜드 코트 한장 정도일 금액이었다.

그건 호의가 아니었다.

경이를 침묵 속에 가두는 봉인 같은 것이었다.


경이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이해할 수 없음이었다.

같은 문장을 듣고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이후 경이는 더 이상 자신을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관계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라는 걸

경이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침묵은 단순한 참음이 아니었다.

마음속 어디에도 발 딛을 곳이 없었다.

토네이도가 한바탕 쓸고간 집안에는 소슬바람 같은 여운만 남아 있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지쳐쓰러져 잠에 빠졌지만

경이는 몸은 너부러졌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전화벨이 길게, 끈질기게 울렸다.

“잘 다녀왔어?

시어머니 돌아가시니 그렇게 서러웠어? 목소리가 안 나오네.”


가라앉을 때마다 손을 잡아주는 친구, 현미였다.

어머니 소식을 듣고 부의금을 보내온 것도,

전화를 걸어준 것도 현미였다.


“응, 고마워. 내가 연락하려 했는데, 경황이 없었어.”

“됐고. 밥 먹자.” 현미가 단호하게 말했다.


“얘들도 있고, 남편도 있고… 그냥 쉬고 싶어.”


경이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뽑아 마셨다.


“현미야, 혹 남편 안 계셔?”

“혼자 여행 갔어. 빨리 나와, 네 집 앞이야. 창밖 좀 봐봐.”

현미는 어느새 아파트 앞에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현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은 경이 자신에게도 쉼이 필요했다.

‘인서야. 엄마 현미 아줌마랑 저녁 먹고 올게.

아빠 일어나면 밥 시켜 먹어!’


경이는 메모를 남기고, 카드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눈물 많이 뺐으니까, 또 채워야지. 복어 먹으러 가자.”

현미가 능숙하게 차를 돌리며 말했다.

“알았어. 맛있는 집 알아? 오늘은 내가 살게.”

“오~ 나 생복어 먹는다. 돈 굳었네!”


현미는 차를 경이네 아파트 정문 쪽 주차장에 세웠다.

탄천을 좀 걷자고 했다.


“경이야, 우리 술 마시자.” 한마디 하더니, 끝이었다.
그녀의 침묵마저 경이를 향해 말하는 듯했다.


탄천을 따라 10분쯤 걸어 내려가자, 음식점과 카페가 아담하게 모여 있었다.
현미는 경이를 장어집으로 이끌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현미는 소주 두 병을 시켰다.
그리고 정철의 ‘장진주사’를 끝까지 읊으며, 경이의 술잔을 가득 채웠다.


“한 잔 마시세 그려. 또 한 잔 마시세 그려.
꽃을 꺾어 수를 세며 한없이 마시세 그려,
이 몸 죽은 후 거적 덮여 지게에 실려 가든,
화려한 상여를 타고 만인이 따라가든….”

동인의 백정이라고 욕을 실컷 했던 정철이지만 그의 글은 욕설을 뱉은 후손의 입에서 다시 읊어졌다.

이 친구마저 없었다면, 어디에 등을 기대었을까.
그 어떤 설득도,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경이는 현미와 자연스레 마음을 주고받았다.

현미도 일찍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픔이 없진 않다.
가끔 만날 수 없는 엄마를 향해 웅얼거리며 흉보던 현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미가 자신에게 마음을 내어준 만큼, 경이는 여유가 없었던 자신을 미안하게 여겼다.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부 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어 있으며 실존 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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