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을 한 번 더 다니기로 하고 새로운 반 분위기에 아직 덜 익숙해졌을 무렵, 학교에서 돌아온 넌 평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어.
-결이 울었니?
“응”
너는 울먹이며 자초지종을 말해줬지.
"Große Pause(30분 이상 쉬는 시간) 때 Ticker 게임을 했어. 술래가 다른 친구 어깨를 치면 걔가 술래가 되거든. 근데 어떤 애 두 명이 자꾸 나만 술래를 하라는 거야. 걔네들과 안 놀겠다고 난 저 쪽으로 갔는데 자꾸 와서 막 내 어깨를 쳤거든"
Hör auf! (그만해!)
-그만하라고 단호하게 말했니?
"응. (울먹) 근데 카티가 땅을 발로 차서 흙이 얼굴에 튀었어"
-진짜? 어이구 울 딸래미 넘 속상했겠다. 너도 똑같이 해주지 그랬어.
"나도 발로 아주 살짝, 카티 여기 무릎 밑에를 살짝만 발로 찼어..."
-그래, 잘했다 우리 딸. 기죽지 말구.
"근데 카티가 루카스를 데려와서 걔들이 나 머리카락 잡아당기고.. (울먹) 난 소리 질렀어"
다행스럽게도 키아나가 그 장면을 보고 선생님께 일렀고 선생님이 달려와 세 녀석을 혼내줬다는 이야기.
아빤 정중하게 네 담임 선생님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어.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 이 상황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집단으로 한 아이를 신체적으로 괴롭히면 안 된다는 점을 교육시켜줬으면 한다고 썼어. 이메일 작성 때문에 아빠 너한테 계속 질문을 했는데,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어.
나 학교 가기 싫어
엄마와 아빠는 속이 미어졌단다. 하지만 이대로 아이에게 패배감 내지 속상함만 안겨줄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그럴 순 없었지. 어딜가나 너를 짜증나게 만드는 사람은 있을테니까.
특히 너는 생김새가 다른 유럽인과는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일을 더 자주 겪을 수도 있어. 특히 네가 9살을 너머 10대 청소년이 되면 이런 문제에 더 예민해질거야.
이 껄끄러운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앞으로 다가올 10대를 네가 행복하게 보내려면 어떤 마음이 네 속에 단단히 뿌리내려 있어야 할지 아빠는 고민했어.
-결아, 일단 네게 잘해주는, 널 소중하게 대해주는 친구들에게 집중하자.
사실 결이가 1C반으로 갓 넘어왔을 때부터 결이를 좋아해줬던 친구들도 적지 않았잖아? 우리 Albertiweg 살 때 집이 근처였던, 짙은 갈색 머리칼에 <해리포터> 속 헤르미온느를 닮은 키아나. 안경을 끼고 짧은 금발 머리가 귀여운 소피. 꼭대기 층에 살았던 헬레네까지. 그때 당시 네게 친절하게 대해준 마음 고운 친구들.
-네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해볼까? 마음이 어때?
"음.. 고마워. 좋아"
그렇지. 너에게 소중한 친구들에게 집중하고 걔네들에게 잘해주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라.
친구들만 있는 게 아냐. 네 동생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결이를 위해 늘 축복 기도하고 있단다.
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게 느껴졌어.
- × - = +
-결아, 그리고. 결이 마음을 힘들게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어쩌면 그 친구들은 자신을 소중하게 돌봐주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럴지도 몰라.
원수를 사랑하라 하지 않았던가.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빈 말일지라도 되레 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줄 때에 네게 더 크고 넉넉한 마음 그릇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결이 요즘 학교에서 배우는 곱셈을 보면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되거든. 친구가 괴롭히면 너도 때려주거나 복수하는 게 일반적이지. 하지만 상대가 사람을 괴롭히는 마이너스적인 행동을 한다해서 너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 거야. 오히려 걔네들 입장에선 마이너스로 여겨질 법한 행동을 하면 상황은 플러스로 뒤바뀔 수 있단다.
"응. 기도해볼게"
그렇게 결인 아빠 말을 새겨듣고 그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어. 그 친구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만져주시라고. 서로 오해가 있었다면 자연스레 풀리게 해달라고 말야.
동시에 너는 키아나를 비롯해 널 좋아해주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선물해주며 빠른 속도로 1C반 공동체에 스며들었어.그림을 선물해줬던 건 독일어가 서툴었던 당시 너에겐 정말이지 신의 한 수 아니었나 싶어.
며칠 뒤.
“아빠, 나 카티랑 오늘 과자 나눠먹었어”
-로티는 요즘 어때?
“응, 짜증나게 안 해. 오늘도 걔 나한테 소리 안 질렀어”
한껏 자신감이 오른 네 미소를 보니 그간 졸였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던 기억이 나. 장하다 우리 딸. 그래 그렇게 하는 거란다. 아빠도 잘 못하는 걸 네가 해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