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회사는 다를 것이라는 환상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회사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회사가 안 망하는 게 신기해"라는 말은 삼성전자와 네이버를 다니는 직원들 입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다음은 내가 이직할 때마다 내가 옮기려고 하는 곳에 다니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들이다.
[2017년. 금융 > IT]
금융권이 연봉도 더 많이 주고, 여의도 금융맨 멋있는데 뭐하러 옮겨? 여기 별로야
[2019년. 대기업 > 스타트업]
너답지 않게 무슨 창업이야? 그냥 다니던 회사 열심히 다녀.
[2021년. IT > 제조]
요즘은 IT기업이 최고잖아. 연봉도 높고, 분위기도 좋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은데 뭐하러 옮겨? 여기 별로야
모든 이직에 있어서 "왜 옮겨?"라는 말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여기도 똑같거나 더 별로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직 때마다 회사의 규모는 5~10배씩 커졌고, 연봉은 20~30%씩 인상되었는데도 말이다.*
* 스타트업은 제외다.
보통 이직 결심의 순간에는 지금의 회사가 '최악'이라는 생각에 어딜 가도 이것보다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곳에 합격하는 순간 이제부터 나는 좋은 곳에서 갓생을 살아가며 승승장구하겠구나 착각한다. 그곳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놓치고 말이다.
실컷 이직기를 풀어놓으며 이직 시도를 응원하다가 그 노력의 결과가 똑같은 곳이라 무의미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직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망할 회사를 떠난다는 설렘에 빠져 과도한 기대로 잘못된 선택을 통해 실망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내가 경험하고 봐 온 이직 후 힘듬을 겪는 이유는 지금 회사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게 다음 회사에서는 없어질 것이라는 무조건 적인 착각 때문이었다. 그런 환상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럼 어떤 것들을 통해 회사를 선택하고 이직해야 할까?
경험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조직문화나 빌런의 유무에 대해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지인들을 통한 사전 조사는 물론 면접 과정 중에도 철저히 확인해야 하겠지만 내부자가 아니고서는 알아내기 쉽지 않다. 그러니 결정의 주된 기준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어야 한다. 덧붙이자면 '눈에 보이는 것들 + (계획되어 있어) 눈에 보일 것들'*이다.
* 사옥 이전, 사업 개편, 업계 동향 등으로 바뀔게 확실 해 보이는 것들이다.
회사의 규모는 좋고 나쁨을 따지는 기준은 아니다. 다만 본인이 추구하는 바와 일치하는 수준을 선택하면 된다. 6인 규모 스타트업부터 수 만 명 규모의 회사를 다녀본 경험으로는 직원 수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간단하게는 복지나 사옥 여부부터 내 업무의 범위와 영향력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더 이상적이고 좋은 것은 없다.
우리가 어릴 때는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을 들어가는 것이 사회적 이상이었지만, 요즘은 대기업에 다니는 게 무조건 좋은 시대는 아니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규모의 회사가 더 좋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주변에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며 장단점을 정리하고 느껴볼 필요도 있다. 대기업의 좋은 점은 모두가 알고 있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영상을 몇 개 추천한다.
* 27년차 실리콘밸리 개발자의 인생 이야기 [한기용] 1부 보러 가기 - Youtube eo채널
* 주7일 일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살까? | Work On the Beach Ep.1 보러 가기 - Youtube eo채널
직주근접은 직장 생활을 하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지방 출신인 나는 회사의 위치에 맞춰 여의도-판교로 이사를 해오며 직주근접을 만족시켜 왔다. 회사를 따라 이동하면 되기에 수도권만 벗어나지 않으면 크게 사무실 위치에 신경 쓰지 않았던 나는 서울 토박이들의 '난 서울에 (더 한 경우 강남, 강북으로도 한정) 있는 회사만 보고 있어'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분당에서 화성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무실의 위치가 직장을 고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출퇴근이 간단하지 않다면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것은 물론 퇴근 후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하루를 뒤돌아 봤을 때 출근부터 퇴근까지가 전부라면 너무 힘이 빠질 것 같다.
* 지금은 재택근무가 많아져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준일 수도 있겠다.
월급쟁이들이 가장 민감한 것은 월급 즉 연봉이다. 이직 과정 중에 면접만큼 떨리는 것도 연봉 협상이다. 가장 많은 이직 사유 중 하나가 연봉이기도 하고, 이직 과정 중 가장 명확히 보이는 요소가 연봉이기도 하다. 그만큼 확실한 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꿈을 위한 창업과 같은 도전이 아니라면 무조건 이직 중에 많이 올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몇 년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옮기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의 이직에는 같은 회사를 다닐 때의 연봉 인상률보다 더 높은 인상을 가져갈 수 있다.
겸손하고 내 할 말을 참는 한국인 특성상 연봉 협상 과정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연봉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주의할 점과 팁은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해 공유해보려 한다.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일'을 하려고 도전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집 바로 옆에서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라 할지라도 너무 하기 싫은 일이라면 금방 그만두게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고액 연봉을 주는 회사에서는 퇴사자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커리어와 일치하는 방향의 일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많이 없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신입 공채와 다르게 경력직은 정확히 내가 원하는 팀 혹은 직무에 맞춰서 컨택을 하게 된다. 따라서, 회사에서도 JD (Job Description)*을 가능한 상세하게 적지만, 실제 하는 일과 약간 차이가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회사의 사업분야는 물론 JD와 면접을 통해서도 나와 fit이 잘 맞는 곳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
* 직무 설명서라고 번역할 수 있으려나. 일에 대한 설명이나 필요한 역량 등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봐야 할 것과 정확히 반대로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조직 분위기나 문화, 좋은 상사, 지금 옆에서 날 화나게 하는 사람, 정치 등은 밖에서 제삼자가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회사에서 지원자를 reference check*을 하듯이 지원자도 지인 혹은 블라인드와 같은 직장인 커뮤니티 통해 확인해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부정확하고 쉽지 않으니 이직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가 되기는 어렵다. 이렇다더라 이럴 것이다를 믿고 이직을 결정하면 안 된다.
* 대놓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지원자 모르게 지인들을 통해 지원자에 대한 평가를 듣는다.
이직은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의 도피가 아닌 내 꿈 혹은 목표를 위한 다음 step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꼼꼼히 알아보고 한 이직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있는 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겠지만, 과도한 환상은 자칫 현타 혹은 포기로 다가올 수 있다.
그것을 줄이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비교해 보아야 한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요소들은 날 속이지 않는다. 딱 그만큼 기대하고 갔으니 만족스러운 이직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연봉, 직무와 같은 요소에서 내가 바라는 성장도 눈에 보일 수 있다.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은 제대로 보고 가야 한다.
[이직기 2] 이직할 때 확인해야 할 필수 기준 4가지